2005년 경희대 캠퍼스의 봄

2005년 봄은 늦게 찾아왔다.
작년같은 SARS는 아니었지만 시베리아의 차가운 기단(氣團)이 따뜻한 북태평양 공기의 북상을 가로막아 봄이 오는 것을 막은 것이다.
봄꽃들의 개화시기가 늦어지는 바람에 마지막 공휴일이었던 4월 5일을 전후하여 꽃들이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개나리, 목련, 진달래, 벚꽃...
다만, 강원도의 산불은 불청객이었다.

출근길 옥수역에서 봄이 오는 길 봄이 찾아오는 문

4월 벚꽃이 피기 시작한 여의도의 증권거래소 앞 교보증권 빌딩에는 정현종 시인의 시 한 구절이 걸려 있었다.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 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 때 그 사람이/ 그 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 걸...

반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는 않았는가,
우두커니처럼...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경희대 교시탑의 목련꽃 경희대의 교화인 목련꽃 경희대 선동호 입구

경희대의 교화(校花)인 목련이 터지기 시작하던 날 수업을 일찍 끝내면서 "Carpe Diem!"하고 학생들에게 말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님이 이야기하던 것처럼
졸업생들은 나중에 한없이 그리워질 테니까 "지금 이 순간 꽃들이 피어나는 것을 보면서 즐거워해야 한다"고.

하루는 점심 식사 후 동료 교수님들과 캠퍼스를 거닐었다.
중앙도서관 앞에서는 미니 콘서트가 열리고 있었다. 교시탑(校是塔) 주변의 목련도 피고 있었다. 선동호 호반에도 벚꽃과 진달래의 화신이 막 당도해 있었다.

경희대 교정의 봄 중앙도서관 앞 미니콘서트 동료 교수님들과

선동호를 빙 둘러서 찾아간 미술대학에서는 경희대 캠퍼스가 꽃구름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겨울 내내 죽은 것처럼 보이던 꽃나무들이 일제히 꽃을 피우는 모습에
나의 젊음도 용솟음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젊은 학생들 속에서 나의 청춘도 되살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힘든 일상이라도 이 순간을 즐겁게 살자(carpe diem)."

경희대 평화의 전당 대학원 야외수업 법무대학원 야간수업 중에

그날 저녁 국제법무대학원의 야간수업시간에 원생들과 함께 틈을 내어 평화의 전당 앞으로 나갔다.
그러나 사방이 캄캄하여 화사한 벚꽃도, 목련꽃도, 진달래꽃도 카메라에 잡히지 않았다.
이처럼 우리 인생의 밤도 쉬이 올 터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