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에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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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4월 22∼24일 금강산 현지에서 개최된 한국산업은행의 [북한경제전문가 100인 포럼] 세미나 참석을 계기로 백두대간의 태백산맥 북부에 위치한 우리나라 최고의 名山 금강산(최고봉은 해발 1638m의 비로봉)에 올랐다.

금강산은 중생대에 생긴 화강암체가 남북으로 달리는 대단층선(大斷層線)을 따라 지층이 단락(斷落)하여 기복량(起伏量) 천 수백 m에 이르는 단층지괴를 형성하여 경관의 골격을 이루었다. 여기에 오랜 세월에 걸친 풍화침식 작용으로 화강암의 수직·수평, 기타 다양한 방향의 시루떡이 갈라진 것 같은 같은 절리(節理)가 생겼다. 옥녀봉을 비롯한 톱날모양의 연봉들은 60∼90˚의 급경사 및 수직절리 면에 형성되었으며, 구룡폭포(九龍瀑布)를 비롯한 많은 폭포들도 수직절리 면에서 발생하였다.

금강산 옥류동의 기암 옥류동의 담 옥류동 계곡

금강산은 인근 통천 출신인 현대그룹 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집념으로 현대아산과 북한 아세아태평양평화위원회 사이에 협약이 체결되어 1998년 11월부터 해로를 통한 관광길이 열렸다. 고 정 회장은 "백만 명이 금강산관광을 하면 북한 사회가 바뀔 것이다"라고 말했다. 안팎의 사정으로 금강산관광이 간헐적으로 중단되고 관광객의 부침도 많았으나 2003년 9월부터 DMZ를 관통하는 육로를 통한 관광이 개시되고 비교적 자유로운 산행이 허용되면서 관광객 수가 크게 늘어나는 추세이다. 2004년 3월까지의 관광객 총수는 60여만 명에 달한다.

온정각 바로 앞 배밭 중앙에는 2003년 8월 별세한 정몽헌 회장의 추모비와 가묘가 있다. 도올 김용옥 선생이 쓴 추모비에는 다음과 같은 추모사가 적혀 있다.
정몽헌 회장 추모비 추모비 주변의 배밭 도올 선생의 추모사

"정몽헌(1949-2003) 여기 조선 땅의 숨결이 맥동치는 곳 금강에 고이 잠들다.
아버지 아산 정주영의 유훈을 이어 세계사의 모든 갈등을 한 몸에 불사르며 남북 화해의 새로운 마당을 열었다.
그의 혼백 영원히 하나된 민족의 동산에서 춤추리.
"

DMZ를 통과하는 육로 관광은 휴전전의 한 구간일 망정 남북분단의 철책선과 남북 군인들의 긴장된 대치상황을 누그러뜨린 상징적인 사건이다. DMZ를 관통하여 민간인 관광객을 태운 수십 대의 버스가 하루에 두 차례씩 줄을 지어 달린다. 최근 들어 인원점검 및 경계를 서는 북측 군인들의 눈초리나 말씨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한다. "자고로 '수승화강'(水昇火降)이 만물의 요체인데 백두대간을 따라 육로가 개방되고 남쪽의 물 많은 관광객들이 금강산에 드나들 때 한반도 평화가 이루어질 것"(한국산업은행 정봉렬 조사부장의 말)이라는 이야기에 우리 모두 박수를 쳤다.

금강산관광은 남북경제협력사업의 일환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북측은 2002년 11월 [금강산관광지구법]을 제정하고, 남측 투자유치에 노력하고 있다. 남북 당국은 이곳에 상설 이산가족 면회소를 설치하기로 합의하였다. 2001년 6월 관광공사가 금강산관광사업에 참여하였으며, 남북협력기금으로 학생, 교사, 이산가족 등의 여비 일부를 지원하였으나 北核사태가 발생하면서 야당의 반대로 2003년부터는 경비지원이 중단되었다.

금강산 만물상 금강산 만물상 만물상 천선대에서

고래로 금강산은 사명당 같은 고승과 의인, 협객이 도를 닦는 신비스러운 영장(靈場)으로도 유명하였다. 금강산은 옛날부터 '밝은산' 또는 신산(神山), 성지(聖地)로 불렸는데, 신라시대 불교 전래 이후에는 한반도를 지키던 아홉 龍이 외국에서 들어온 五十三佛에 쫒겨 구룡소와 구룡연에 숨어버렸다고 한다. "백두대간을 따라서 올라온 남측 관광객들이 금강산에 드나들며 잠자는 용들을 일깨울 때 한반도에서 비로소 민족중흥이 일어날 것"(시사저널 남문희 기자의 말)이라 한다면 지나친 상상일까. 조만간 금강산관광지구에 이산가족 면회소가 설치될 경우 이곳을 포크웨어(folkware)와 인도주의(humanism), 이색적인 스포츠·오락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개발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룡연 코스

온정각에서 버스편으로 미인송 숲, 신계사지를 통과하여 구룡연 주차장에 도착한 후 조장으로부터 간단히 코스 설명을 들었다. 목란관을 지나 신계천을 끼고 오르면 삼림욕을 할 수 있는 수림대를 거쳐 앙지대(仰止臺)에 이른다. 이곳에서 코끼리 바위, 거북바위 등 다양한 모습의 기암괴석을 구경할 수 있다. 만경다리를 지나 산삼·녹용이 녹아 있다는 삼록수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인다.

금강산 소나무숲 금강산 옥류동 금강산 옥류동 계곡

바위 사이에 뚫려 있는 금강문을 지나 출렁다리를 건너면 금강산 최대의 비경(秘境)을 자랑하는 옥류동 계곡에 이른다. 이곳은 이백의 산중문답(山中問答) 詩句에 나오는 그대로 "別有天地非人間"(인간세상이 아닌 별천지)이다. 선녀들이 춤을 추었다는 무대바위에 이르면 저 멀리 눈앞으로 꽃잎을 공중에 뿌려놓은 것 같은 천화대(天華臺)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구슬처럼 초록색 2개의 담소(潭沼)를 비단실로 꿰어 놓은 연주담(連珠潭)을 지나 봉황이 하늘을 날아오르는 듯한 비봉(飛鳳)폭포 아래에 이른다.

"왼쪽에는 굵고도 잔재미스런 주름을 가진 암벽, 오른쪽에는 뾰족한 채 보드랍게 된 봉우리, 널브러진 채 오긋하고 희고 깨끗한 대반석, 어지러우면서도 간잔지런한 뿌다귀 많은 큰 돌덩이, 이 중에 갖은 짓은 다 하는 맑은 계곡물과 갖은 멋을 다 부린 노목(老木)들이 아주 특별한 안배와 절대적인 조화를 이룬 곳이다." 최남선의 [금강예찬] 玉流洞記에서.

금강산 옥류동에서 옥류동 비봉폭포 옥류동 구룡폭포

상팔담 가는 길은 너무 가파르고 2001년에 올라본 적이 있기에 단념하고 관폭정(觀瀑亭)으로 간다. 예부터 조선의 3대 명폭포로 알려진 구룡폭포는 높이 74m 너비 4m의 직폭으로 폭포 밑의 소(沼)는 한반도를 지키는 아홉 마리의 용이 산다는 구룡연(九龍淵)이다.

"귀는 터진 대로 먹어 버리고, 눈은 뜬 대로 멀어 버리고, 얼은 말짱한 채로 빠져 버리고, 어느 틈엔지 폭포가 그만 나에게 와서 들씌워지고, 나는 그만 폭포 속으로 쑥 들어가 버린다. 또 한 번 나도 모르게 '예, 하느님!' 하고 예배를 하였다. … 이 폭포 하나를 만드느라고, 골짜기를 이만큼 깊게 하고, 바위봉을 이만큼 웅장하게 하고, 이 막바지에서 저 거령(巨靈)으로 하여금 팔을 벌려서 긴 소매를 늘어뜨리게 하고, 거기다가 저 부푼 은사(銀絲) 테를 걸어 놓기까지, 조화주의 노력이 결코 심상치 않았을 것이니, 이에 못내 감격하였다." 최남선의 앞의 책에서.

신계동 주차장에서 구룡연까지 오르는 길은 천하절승(天下絶勝)의 계곡미(溪谷美)를 감상할 수 陰氣가 성한 지역이라 한다. 오른 길을 되짚어 내려와 북측 목란관에서 우리 입맛에 별로 맞지 않은 물냉면, 비빔밥으로 점심 식사를 하였다.

만물상 코스

금강산 만물상 만물상 기암 만물상 기암

만물상에 가는 길은 경사가 가파르고 기암괴석이 곳곳에 서 있는 陽氣가 왕성한 구역이다. 한하계(寒霞溪)를 끼고 106굽이의 온정령 길에서 중턱까지 77굽이를 달려 만물상 주차장에 도착했다.

만물상은 특정한 봉우리 이름이 아니고 온정령 북쪽 금강산의 오봉산 일대의 기암군(奇岩群)을 한꺼번에 일컫는 말이다. 금강산 일만이천 봉을 한눈에 모두 볼 수 있도록 한 장에 온통 조각해 놓은 것 같아서 만물초(萬物草)라고 부른다고 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느 돌 하나, 어느 모 하나고 사물의 모양 아닌 것이 없고, 그것이 하나도 같은 것이 없으며, 그 속에 없는 물형(物形)이 없다고 할 만도 하다. 그러나 그뿐인가, 하나를 가지고도 아까 볼 적에는 이렇던 것이 이따가는 저렇고, 이리 보면 이렇다가 저리 보면 저렇게 달라져서, 한순간도 고정된 모습이 있지 않아서, 그 기괴한 변환을 이루 이를 길이 없다." 최남선의 앞의 책, 萬物草記에서.

만물상 삼선엄 만물상 귀면암 귀면암에서 강태수, 오준근 교수와

계곡의 초입의 다리를 건너면 바로 만물상을 지키는 초병처럼 삼선암과 귀면암이 우뚝 솟아 있다. 비 오는 여름철에만 생기는 계절폭포 옆으로 힘센 장수가 큰 도끼로 바위 중턱을 찍어 놓은 것 같은 절부암이 서 있다. 천선대로 오르는 길은 경사가 급하고 철계단도 거의 수직에 가깝다.

조심조심 철계단을 오르니 해발 936m의 천선대(天仙臺)이다. 서너 사람이 서 있을 정도의 공간이라 간신히 사진을 찍고 천태만상의 만물상을 돌아본 후 다른 코스로 하산한다. 천선대 밑에는 물맛에 반해 짚고 온 지팡이도 잊고 간다는 망장천(忘杖泉)이 있는데 마침 보수공사 중이다. 아래위가 다 절벽이지만 벼랑 턱이 말안장 같아 마음놓고 쉴만하다는 안심대를 거쳐 귀면암(鬼面岩)에 오른다. 화강암의 풍화작용으로 귀신의 얼굴처럼 만들어진 귀면암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내려온다. 주차장 부근의 김일성이 앉아 쉬었다는 벤치에 앉아 금강산 관광을 총정리하였다.

중국 송나라의 명문장가인 소동파는 "願生高麗國 一見金剛山"(내 소원은 고려국에 태어나 금강산을 한 번 보는 것)이라 했다는데 남북분단 시대에 육로로 금강산을 구경한 우리는 소동파보다 더 행복한 사람들이라 생각하였다. 산행 도중에 만난 북측 환경감시원들은 요소요소에 남녀 2인이 1조를 이루어 지키고 서 있었는데 남한의 정치정세에 관심이 많았다. 우리가 건네주는 초콜렛이나 사탕을 받기도 하지만 내가 준 먹거리는 극구 사양하였다. 알고 보니 그 초콜렛 바의 이름이 공교롭게도 '자유시간'이었다.

관광정보

금강산 온정각 대학생 야영장 온정각에서의 관광객 환송

금강산관광은 현대아산이 북한 당국으로부터 30년간 이용권을 얻어 개발한 온정리 지역, 구룡연 코스, 만물상 코스, 삼일포-해금강 코스에서만 제한적으로 이루어진다(이 지역 외에서의 사진촬영은 엄격히 금지되며 적발 시에는 벌금이 50달러임). 관광객들은 30명 단위로 조장 인솔 하에 버스를 타고 함께 행동한다. 환경감시원 이외의 북한 주민과는 접촉할 수 없고, 온정각을 중심으로 숙소를 오가면서 북한 주민들의 생활상을 먼발치로 엿볼 수 있을 뿐이다.

숙소는 비용 및 기호에 따라 장전항에 정박해 있는 선상호텔인 해금강호텔, 그 앞의 펜션 단지, 가족단위의 취사침식이 가능한 RV 캐러반과 6인용 콘테이너인 금강빌리지, 온천장 구역의 펜션형 온천빌리지 등 여러 곳에서 할 수 있다. 북측과의 협의에 따라 김정숙 휴양소, 금강산려관을 숙소로 활용하기 위한 공사를 할 계획이라 한다.

해금강호텔 앞에서 북한경제전문가포럼의 금강산 세미나 통일전망대 CIQ에서

식사는 해금강호텔에 투숙한 관광객들의 아침식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온정각에 있는 뷔페 식당(1회 10달러)에서 하게 된다. 푸짐하게 식사를 할 수 있는데 인근 영농원의 비닐 하우스에서 재배한 야채쌈이 큰 인기이다. 최근 들어 고성횟집이 영업을 개시하여 한국식으로 싱싱한 광어, 우럭 등의 생선회를 즐길 수 있다. 밤중에 식사를 마치고 숙소인 해금강 호텔로 걸어가는 도중 하늘에서는 별빛이 마치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것 같았다.

금강산관광시설은 대부분 관광공사에 넘겨졌고 현대아산이 그 운영을 맡고 있다. 현대아산은 장전항 부두시설을 우리 정부가 인수해 줄 것을 바라고 있다. 관광을 안내하는 조장을 비롯한 핵심인력은 현대아산측 남한 사람들이지만 버스 기사, 식당 및 매점 종업원들은 중국동포들이다. 현지 북한 사람은 만경대 교예단원들과 관광객들이 버스로 이동할 때 앞뒤에서 칸보이하는 차량의 탑승자가 전부라고 한다. 온정각, 해금강호텔, 식당 종업원들은 관광객들이 떠날 때 일렬로 도열하여 손을 흔들어주었다. 현재 30개 병상을 갖춘 온정각 구내 금강병원의 의사를 구하는 문제가 시급하다고 한다.

활시위를 당긴 모양의 장전항 온천탕 옥상(노천탕)에서 바라다보이는 금강산 스카이라인 만물상 절벽에 핀 진달래꽃

기후는 설악산과 거의 비슷하며, 바람이 많이 불고 기상변화가 심하므로 그에 맞는 옷차림과 음료수, 간식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만물상 코스 외에는 비교적 평탄하게 걸을 수 있다. 천선대의 급경사 철계단도 무릎관절염이나 고소공포증이 없는 한 60대 노인도 거뜬히 오르내리는 것을 보았다. 삼일포-해금강 코스는 가벼운 산책 코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