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의 암호를 풀 자 누군가

최근 그레이엄 핸콕의 "신의 암호"(The Sign and the Seal 암호와 봉인: The Quest for the Lost Ark of the Covenant)라는 책을 읽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삶, 국가와 사회, 나아가 이 세상은 신이 만들어 놓은 암호로 가득 차 있는 게 아닐까. 잠긴 문을 열고 들어가려면 그에 꼭 맞는 열쇠를 손에 쥐어야 하는 것처럼 암호 해독에 성공한 사람, 조직, 국가만이 번영을 누릴 수 있는 게 아닐까.

프리메이슨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영화 National Treasure 물론 이 책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레이더스'(Raiders of the Lost Ark)로 유명한 舊約의 언약궤를 추적하는 과정을 그린 논픽션 역사추리물이다. 이 책에서 저널리스트 출신인 저자는 그 옛날 누군가가 비밀리에 성궤의 소재를 알아냈다면, 그리고 그 소재지를 후세에 알리고자 했다면 어떻게 하였을까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있다. 2004년 말에 개봉된 영화 '내셔널 트레저'(National Treasure)도 같은 소재를 다루고 있다.

예를 들어 보물지도를 만들어 용기에 담아 땅에 묻어둔다면 1백년도 안되어 사라지거나 잊혀지기 십상일 것이다. 또 누군가가 잊지 않고 다시 파내야만 빛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12세기 십자군 점령하의 예루살렘에서 구약의 유물 발굴작업을 벌였던 '템플 기사단'과 같은 지식계층이 언약궤의 소재를 파악하여 이를 고대 서사시 '파르치발'(Parzival)과 같은 문학작품 속에 암호로 적어 놓았다면, 그 비밀은 세계문화 속에서 영원히 보존되고 그 암호를 판독할 능력을 갖춘 사람은 언제든지 그 책을 통하여 보물지도에 접근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은 단번에 비밀을 공개해 버릴 것이지 왜 어렵사리 암호를 만들어 놓고 知的 게임을 즐기듯 그것을 푸는 사람에게만 은총을 내리시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복을 주고자 작정하셨으면 퍼붓듯이 베푸시지 않고 '좁은 문'을 통과한 사람에 한하여 허락하시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이 책의 저자는 유럽과 아프리카를 오가는 탐구여행 중에 흥미로운 역사적 가설을 제시한다. 템플 기사단은 성서의 엄청난 비밀을 풀려는 열정에 가득 찬 집단이었다. 그들은 이러한 계획을 방해하려는 무리가 도처에서 훼방을 놓기 때문에 비밀주의적이고 폐쇄적일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템플 기사단은 13세기 에티오피아에서 언약궤의 존재를 확인하였다. 그러나 그들로부터 언약궤를 지키고자 한 에티오피아 왕이 아비뇽에 옮겨가 있던 클레멘스 5세 교황과 프랑스의 필립 5세 왕을 부추겨 템플 기사단을 해체하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역사는 한때 엄청난 세력을 과시하며 秘傳의 석조건축 기술을 자랑하던 템플 기사단이 1307년경 교황과 프랑스 국왕으로부터 엄청난 박해와 고문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일부 잔존 세력은 박해가 심하지 않은 포르투갈이나 영국 등지로 피신하여 프리메이슨(Freemason; 중세 石工들의 비밀결사단체) 등으로 명맥을 이어간 사실도 전하고 있다. 일례로 영국을 상대로 미국 독립전쟁을 벌인 조지 워싱턴, 벤자민 프랭클린, 라파이예트 등은 유명한 프리메이슨 단원이었으며, 미국 워싱턴 DC 남부 교외의 알렉산드리아 언덕마루에는 프리메이슨 단원이었던 워싱턴을 기리는, 옛날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등대처럼 높고 우람한 석조 기념관이 서 있다.

에덴 동산의 선악과처럼 잘못 사용하면 그것이 큰 해악을 끼칠 수 있는 비밀은 감추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든다. 물을 끓이면 수증기가 나온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태고적 원시인이 그 원리를 깨달을 필요가 있었을까. 이 원리는 산업혁명이 태동할 즈음 제임스 와트 같은 지혜로운 사람에 의하여 증기기관으로 발전할 수 있으면 그만이었다.

眞理란 누구나 보고 듣고 체험할 수 있지만 그 비밀은 원리를 이해한 사람에게만 제한된 접근이 허용되는 것이다. 앞으로 경제사회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것임에 틀림없는 인터넷 상거래의 예를 들어보자.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개방된 네트워크이지만 특정 상대방하고 계약을 체결하거나 대금을 결제할 때에는 암호화 키를 이용하여 전자서명(digital signature)을 하게 되어 있다.

세계 도처에서 세기말적인 징후가 나타나는 가운데 새로운 밀레니엄을 대망하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더욱이 우리 국민은 6·25 참화에 버금가는 국가부도 위기에 처하여 IMF 체제하에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해방된지 50여년만에 엄청난 경제적 시련을 겪게 된 것도 여기에 뭔가 '크고 비밀한 일'이 감춰져 있다고 보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豫感이 아닐 것이다.

이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만 하면 미증유의 성공과 번영이 보장되는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전자상거래상의 디지털 서명에 사용되는 한 쌍의 키 중에서 하나는 공개키(public key)이고 다른 하나는 비밀키(private key)인 것처럼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공개된 정보와 비밀스러운 원리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비밀은 무엇이고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암호문은 무엇일까.

우리는 암호를 풀어가듯이 주어진 과제별로 우리의 가용자원을 총동원하여 최선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신의 암호'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의식하지 못하고 지나쳐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 합심협력하여 21세기 전략목표를 설정하는 등 그 암호의 해결에 노력한다면 활기찬 미래가 보장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출처: 산은소식 1998.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