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균이의 웨딩 리허설
Wedding Rehearsal of Jae Kyun

※ 아래 나오는 사진을 한 번만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으며 '다른 이름으로 그림 저장'하기를 하여 다운로드를 받으실 수도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보통 결혼식 전날 리허설을 합니다.
웨딩 플래너가 식장에서 신랑.신부와 그 부모, 들러리들에게 결혼식 순서와 역할을 알려주고 예행연습을 하는 것이지요. 모두 평상복 차림으로 친지들까지 가서 구경을 합니다.
저녁에는 신랑측에서 베푸는 만찬(Rehearsal Dinner) 행사가 있습니다. 사실상 양가 친지들의 상견례를 겸한 '약혼식'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Freeway from LA to San Diego

2006년 10월 6일 금요일, 여느 때와 다름없이 LA의 날씨는 화창하였습니다.
우리는 유타 주립병원에서 Ph.D.과정을 하면서 임상심리상담사로 일하는 지영이(Jennifer Jeeyoung)가 모는 차를 타고 LA에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샌디에고로 떠났습니다. 실버 아파트에 사시는 신랑의 외할머니는 식장에서 입을 한복을 곱게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캘리포니아주의 고속도로는 통행료를 받지 않기 때문에 'Free Way'라고 부릅니다. 1차선은 'Car Pool Lane'이라 하여 2인 이상이 탑승한 차량만 통행할 수 있으며, 위반 시에는 벌금이 341불이나 부과됩니다. 우리나라의 '버스전용차선'과 비슷하지만 버스가 많지 않은 미국에서는 2인 이상이 탄 승용차도 통행할 수 있습니다.
같은 고속도로이지만 LA 카운티보다 재정상태가 좋은 오렌지 카운티의 노폭이 훨씬 넓었습니다. 5번 고속도로는 태평양 해안을 끼고 달려 오른쪽으로 허리케인이 없는 잔잔한 바다가 이어졌습니다.



On the Road to La Jolla

결혼식이 열리는 샌디에고 현대미술관은 샌디에고 북쪽 교외의 해변가에 있었습니다.
전망 좋은 해변가는 어느 곳에서나 그러하듯이 부자동네였습니다. 발레 파킹에 7불(통상 3불)이나 하는 고급 음식점도 즐비하였습니다.
라 호야 지역에는 한국인들도 많이 거주하는데 멕시코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샌디에고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 이후 급팽창하면서 특히 건축가로 활동하던 분들이 라 호야 지역의 부동산 개발로 크게 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At the Museum of Contemprory Art, San Diego

샌디에고 현대미술관은 작고 아담하였습니다. 해변 쪽에서 바라볼 때 폭풍우를 뚫고 항해하는 배의 모습이 벽화로 그려져 있고, 각종 보트가 하나의 형상을 이루면서 허공에 매달려 있는 조형물이 시선을 끌었습니다.
실내에서는 라틴 팝 아트가 전시되고 있었으나 결혼식 하객으로서 들어가 보지 못했습니다. 옥외에는 아기자기한 조형물이 전시되어 있었지요


Rehearsal at the Mueum Balcony

미술관 발코니에서는 태평양이 한 눈에 내려다 보였습니다.
미술관 순례를 하면서 이곳을 결혼식장으로 점찍은 조카의 마음 씀씀이가 느껴졌습니다. 내일 결혼식이 열릴 때 수평선 뒤로 지는 석양은 장관을 연출할 것임에 틀림없었습니다.
발코니에서는 웨딩 플래너가 들러리들(신부쪽은 Bridemaid, 신랑쪽은 Groom's Best Man, Ring Bearer라 함)에게 여러 가지 지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들러리들은 여러 차례 해본 경험이 있는지 다 아는 학습내용을 강의 듣는 학생들 같았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몇 평 안 되는 발코니가 내일이면 화려하게 변신할 터였습니다. 이 자리에 모인 신랑.신부는 물론 신부측 가족들은 매우 상기된 표정이었습니다.



Rehearsal Dinner at the Radisson Hotel La Jolla

결혼식 리허설 만찬은 라 호야 초입에 있는 라디슨 호텔 소렌토룸에서 열렸습니다.
신랑.신부는 미리 준비한 한복을 입고 신랑 부모와 나란히 서서 하객들을 맞았습니다. 미국에서는 초대받은 손님들이 입구에 놓여진 명패를 찾아서 그 뒷면에 표시되어 있는 테이블을 찾아가 앉아야 합니다.
리셉션에서 미국 사람들은 가벼운 음료(포도주와 주스류는 무료로 제공)를 마시면서 서로 담소를 나누며 웨이터가 들고 다니는 음식을 집어 먹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리셉션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 손님들은 처음부터 좌정하고 앉아 옆자리의 하객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래도 오랜만에 이국땅에서 만나는 친지.친척들이 너무 반가웠습니다.



신랑 부모로부터 신랑.신부가 새 가정을 이루는 데 대한 축하와 격려의 말씀, 하객들에 대한 감사의 인사가 있었고 대표기도, 양가 참석자에 대한 소개, 신랑.신부의 인사말씀이 이어졌습니다.
처음 상견례인 데다 미국 전역과 멀리 서울에서 참석하였으므로 삼촌, 고모, 이모라 하기보다는 어디에서 무엇을 한다는 좀더 자세한 소개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또 하객 중에는 영어를 못하시는 분도 있으므로 영어와 한국어(bi-lingual)로 진행하는 편이 좋았을 것입니다. 신랑측 친지는 대부분 LA와 샌프란시스코에 몰려 있는 반면 신부측 집안은 시카고 외에도 보스톤, 뉴욕, 댈러스 등 여러 곳에 퍼져 살고 있었습니다.
저는 대표기도를 하기 전에 신랑이 미국에서 변호사가 된 것은 삼촌이 'Professor of Law'라서라기보다 2촌인 외할아버지가 한국전쟁 때 납북되신 유명한 '판사님(Judge)'이었음을 지적하고 그 외조부님으로부터 물려 받은 DNA가 너무 파워풀하여 역시 변호사인 신부를 맞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는 조크를 말했지요.
이날 신랑.신부는 내일 결혼식을 앞두고 마냥 행복해 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