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사와 아키라의 꿈(夢) 이야기

구로사와 아키라의 꿈 매 학기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없는 일본의 문화영화를 감상하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1990년에 개봉되었던 영화 [꿈](Dreams)은 구로사와 아키라(黑澤 明) 감독이 자신의 꿈에 관한 8개의 에피소드를 각각 15분 정도의 길이로 만든 옴니버스 영화입니다.

옛날 미국에서 레이저 디스크를 구입한 뒤 종종 틀어보았던 영화인데 몇 장면에서는 아키라 감독의 꿈이 나에게도 전해지는 느낌이 들곤 합니다. 특히 반 고흐를 다룬 에피소드는 나로 하여금 고흐 특유의 꿈틀거리는 필체를 이해하게 만든 수작이었습니다. 더욱이 괴기스럽기만 하던 [까마귀떼 나는 밀밭] 그림을 속속들이 이해하게 된 것은 오직 아키라 감독 덕분이었지요.

우리는 이 영화를 보면서, 동양의 영화감독이 세계 영화사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무엇보다도 그가 평생 꿈꾸었던 美의 추구가 어떻게 현실로 나타났는지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시간 관계상 두 편의 에피소드만 비디오로 편집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래의 해설은 일본 영상문화연구회 기획팀장인 이상기 씨의 글을 인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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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꿈을 8개 옴니버스로 영화화

작고한 지 80년도 넘었지만 오늘날까지도 일본 국민들로부터 폭 넓게 사랑을 받고 있는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의 소설 중에 [꿈 열흘 밤]과 [마음]이라는 작품이 있다. 1908년에 쓰여진 이 소설은 자신이 직접 꾸었던 꿈을 토대로, 열흘 밤 동안의 꿈을 아름답고 환상적이면서도 때로는 공포스럽게 그리고 있다. "이런 꿈을 꾸었다"로 시작되는 각각의 꿈은 프로이드의 꿈 해석론이 소개되지 않았던 시기임에도 본격적으로 꿈을 파헤친 작품으로 유명하다.

나쓰메 소세키가 이 작품을 쓰기 시작한 1908년도로부터 2년이 지난 후, 구로사와 아키라가 태어났다. 살아오면서 나쓰메의 작품을 익히 읽었던 구로사와는 자신의 나이가 80세 되던 해인 1990년에 영화 [꿈]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나쓰메가 소설 [꿈 열흘 밤]을 쓰기 시작한 1908년으로부터 90년이 지난 1998년에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불귀의 객이 되었다. 기이한 것은 나쓰메가 이 소설을 쓰고 나서 8년 후에 죽은 것이나 아키라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들고 8년 만에 타계한 것이 일치한다는 점이다.

영화 [꿈]도 나쓰메의 소설 [꿈 열흘 밤]처럼 감독 자신이 인생을 살아오면서 꾸었던 꿈을 토대로 만든 옴니버스 영화이다. 구로사와 감독은 꿈에 관한 8개의 에피소드를 통하여 80세의 나이에 절정에 달한 내공을 발휘하여 스크린 위에 꿈 이야기를 미학적으로 풀어놓았다.

아카데미 특별공로상을 수상한 거장

이 영화가 개봉되기 두 달 전인 1990년 3월 26일 구로사와 감독은 동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특별공로상을 수상했다. 그 연배의 동양인으로서 (서양인으로서도 결코 작은 체격이 아닌) 187cm에 90kg인 그가 단상에 올랐을 때의 중량감은 단지 이 거장의 체구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었다. 그를 영화적 스승으로 모셔온 할리우드의 타이쿤 스티븐 스필버그와 조지 루카스가 바로 구로사와의 곁에 서서 그들의 스승이 80세 생일에 수상한 특별공로상의 가치를 더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알려진 대로 미국 영화(존 포드 감독)로부터 영화를 배운 구로사와, 그리고 구로사와로부터 영화를 배운 스필버그와 루카스의 인간관계는 당시 미국 문화에 대해 무한한 동경을 품어온 일본 문화가 거꾸로 미국 문화에도 영향을 끼쳤다는, 일종의 문화 역수출의 사례로 클로스업되었다

이러한 구로사와와 스필버그, 루카스의 끈끈한 관계가 다시 주목을 받은 것은 스필버그와 루카스가 일본에서의 영화제작 과정에서 고전(일본의 메이저 영화사인 '토호' 영화사는 [꿈]의 제작을 거부)하고 있던 구로사와의 영화 [가케무샤](1980), [亂](1985), [꿈](1990) 등의 제작에 크게 도움을 준 사실이다.

구로사와가 이 영화에서 표현하고자 한 꿈이라는 소재 자체가 너무나 많은 특수효과가 필요한 이미지들로 가득 차 있고 일본의 기술력만 가지고는 제작 자체가 불가능한 영화였다. 결국 조지 루카스가 설립한 ILM社에서 이런 시각효과 부분을 담당했으며, 그들이 만들어낸 특수효과에 구로사와 자신도 매우 만족해 하였다. 이 영화에서 화제를 모든 것은 [제5편 - 까마귀]에서 미국의 영화감독 마틴 스콜세지가 고흐로 분하였다는 점, 미국 워너브러더스 영화사가 제작비 12백만 달러를 출자하고 구로사와와 스필버그가 공동 제작했다는 점, 그리고 워너브러더스가 전세계 배급을 맡았고, 소니를 비롯한 일본 전자회사와 할리우드의 기술력이 협력하여 구로사와의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하이테크 영상을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구로사와의 마지막 [꿈]

감독 자신의 '꿈'의 세계는 영화 내에서 때로는 아름답게 때로는 잔혹하게 그려져 있고, 각 에피소드는 독특한 스타일로 하나의 체계를 이루고 있다. 각양각색의 꿈을 통해 불안과 희망이 중첩되어지면서 문명사회에 대한 비판, 그리고 자연과 인간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에 대해 역설하고 있고, 일본 특유의 애니미즘에 연유한 따뜻한 시선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설명전개의 모호함과 구로사와의 이전 영화들과 비교하여 너무 낯선 영상으로 인해 화제만큼 관객들의 사랑을 받지 못했고, 평단으로부터 찬반 양론의 상반된 평을 받았다. 지금까지 구로사와가 추구해 오던 휴머니즘의 결정판이라는 찬사도 있었지만, 이제는 너무나도 거장이 되어버린 구로사와의 한낱 독백에 불과하다는 비난도 만만치 않았다.

이후 [8월의 광시곡](1991), [마아다다요](1993) 등의 소품에도 손댔지만, [꿈]은 1998년 9월에 타계한 구로사와의 마지막 대작을 장식했다. 젊어서 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에도 참여했던 화가 지망생 구로사와는 [꿈]을 만들 때 60여 장의 이미지 스케치를 그렸는데, 모두가 화려한 색채와 夢幻的 분위기로 가득 차 있었다. 영화를 만들 당시 초기에 구상하였던 11개의 에피소드는 영화를 만들면서 8개로 축소되었다. 고흐를 만나는 장면에서의 노란 밀밭은 그 색감을 내기 위해 밀밭 전체를 노랗게 색칠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영화와 인생을 함께 산 구로사와 감독

영화 [꿈]은 세계 10대 영화감독 중의 한 명으로 손꼽히는 구로사와 감독이 20세기에 꾸었던 꿈을 영화라는 꿈의 예술을 통해 창조해낸 것이다. 평생을 영화와 함께 살아 온 구로사와는 과연 그가 살았던 20세기에 어떤 꿈을 꾸었을까? 그의 인생 자체가 바로 꿈이 아니었을까? 중국의 철학자 장자는 잠을 자면서 자신이 나비가 되어서 날아가는 꿈을 꾸다가 깨어났을 때, 내가 나비 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내 꿈을 꾼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영화와 인생을 함께 산 구로사와의 삶과 그가 만든 영화 [꿈]을 마주하게 되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구로사와가 영화의 꿈을 꾼 것인지, 영화가 구로사와의 꿈을 꾼 것인지……. 그는 죽어서도 우주공간에서 영원히 영화의 꿈을 꾸면서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어낼 것이다. 영원한 우주로 돌아간 구로사와 아키라는 20세기에 탄생한 영화가 20세기에 만들어낸 가장 빛나는 별 중의 하나가 되었다.

이제 21세기가 시작되었다. 우리가 지나온 인생길에서 어떠한 꿈을 꾸었고, 그런 꿈을 어느 정도 이루었고, 또 얼마나 잃어버렸는지? 또 앞으로 어떤 꿈을 꾸면서 앞에 펼쳐진 인생길을 걸어갈 것인지? 우리는 꿈을 꿀 수 있고, 꿈을 가질 수 있기에 가능성이 있고 그래서 행복한 것이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마음]에 나오는 글처럼 '지금보다 외로울 미래를 견디기 보다 외로운 현재를 참아내고 싶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 중의 한 명이 바로 우리인 셈이다.

Story Line

[제1편 - 여우비]
구로사와(黑澤)라는 문패가 보이는 집 앞에서 5살 된 구로사와가 서 있다. 하지만 오늘은 해가 비치는데도 비가 내리고 있다. 어머니는 여우가 시집가는 날이기 때문에 여우비가 내리는 것이라면서 그 모습을 보면 안된다고 가르쳐준다. 하지만 어린아이는 어머니의 충고를 잊어버리고 숲으로 몰래 숨어 들어가 여우가 시집가는 행렬을 훔쳐본다. 집에 돌아온 아이에게 어머니는 여우가 이 사실을 알고 있다면서 여우가 용서하지 않으면 할복자살해야 한다고 단도를 건네준다. 아이는 다시 숲속으로 들어가는데, 그때 아이 앞에 펼쳐지는 것은 비가 그친 뒤에 무지개가 떠 있는 아름다운 꽃밭이다.

[제2편 - 복숭아밭]
3월 3일 히나 마쓰리(ひなまつり) 날 어린 구로사와는 누나들과 함께 인형 놀이를 한다. 그때 어느 소녀가 나타나 그를 부른다. 구로사와는 이상하게도 자기에게만 보이는 어떤 소녀를 따라 복숭아 과수원으로 가지만 복숭아 밭에는 개발의 바람이 불어 이미 나무를 모두 베어버린 뒤다. 소녀는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리고 나무를 베어버린 자리에서는 복숭아 나무의 정령들이 다양한 색채의 일본 전통 복장을 한 천황 부부와 귀족, 무사, 궁인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 어린 구로사와에게 복숭아 나무를 왜 잘랐느냐고 나무란다. 그리고 울먹이는 구로사와 앞에서 천천히 춤을 추며 연주를 시작한다. 얼마 뒤 협주곡이 울리는 가운데 복숭아 꽃잎이 휘날리면서 정령들은 사라져 버리고, 그 자리엔 방울소리를 내는 (소녀의) 복숭아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제3편 - 눈보라] 생략
[제4편 - 터널] 생략

[제5편 - 까마귀]
미술관에서
반 고흐의 그림을 관람하고 있던 구로사와는 그림 [아를의 도개교]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그는 그림 속의 마을 처녀에게 길을 물어 고흐를 찾아간다. 구로사와는 고갱과의 말다툼 끝에 귀를 자르고 머리에 붕대를 감은 채 들판에서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는 중이다. 고흐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지만, 고흐는 힘차게 달리는 기관차처럼 작품 제작에 여념이 없고 무심하게 떠나버린다. 구로사와는 고흐를 쫓아 여러 가지 그림 속을 돌아다닌다. 고흐가 사라진 밀밭 길 위로 수십 마리의 까마귀떼가 날아오르는데 바로 괴기스러운 [까마귀떼 나는 밀밭] 그림 속의 명장면이다.

프로방스 아를로 반고호를 찾아간 청년 미술학도 아키라 구로사와 프로방스의 삼나무 까마귀떼가 날아 오르는 프로방스의 밀밭

[제6편 - 붉은 후지산] 생략
[제7편 - 귀신이 울부짖는다(鬼哭)] 생략

[제8편 - 물레방아가 도는 마을]
구로사와는 여행을 하다가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어느 마을에 당도한다. 그곳은 아직도 현대 문명을 거부한 채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고장이다. 그가 만난 103세 먹은 촌노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강조하며, 자연을 잊어버리고 문명의 편리함만을 좇는 사람들을 훈계한다. 죽음의 순간이 다가온 이 노인은 죽음이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고 믿기에 두려움 없이 죽음을 맞는다. 온 마을 사람들과 악대는 신명나는 연주를 하면서 그 노인의 죽음을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