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봉 선영 성묘
Visiting Ancestral Tombs

선영에서 바라다본 운봉읍 전경 어떤 사람이 잇따라 사업에 실패한 후 절망한 나머지 소주병을 들고 고향 땅에 모신 부모님의 산소를 찾아갔다. 더 이상 이 세상을 헤쳐나갈 용기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가 버스에서 내려 부모님의 묘소를 찾아 산길로 접어들려는 찰나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던 사람과 마주쳤다.
"아니 이게 누구신가?"
반갑게 인사를 하는 마을사람을 쳐다보니 그는 옛날에 아버지가 장학금을 주었다는 그 또래의 고향사람이었다. 차림새가 그보다 훨씬 좋아보이는 고향사람은 그의 행색을 살피더니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었다.
"내 그렇지 않아도 선친께 받은 은혜를 어떻게 갚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하고 이야기 좀 함세."
이래저래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그는 인근 음식점에 들어가서 고향사람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조금 이른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고향에 내려와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보라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언젠가 라디오 방송에서 이런 사연을 듣고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전에 펼쳐놓았던 인연의 그물이 아들의 추락을 막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만일 그 아들이 마지막으로 부모님의 산소를 찾지 않았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들에게 부모님의 산소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이미 돌아가신 분이 아니라, 지하에서 어떠한 하소연도, 신세한탄도 귀 기울여 들어주실 생전의 부모님으로 인식하고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찾아가서 자신의 사정을 고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풍수지리 덕분에 당대발복(當代發福)하려는 욕심으로 부모님의 묘(墓)자리를 잡는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무언(無言)의 상담 대상을 찾기 위해 멀지 않은 곳에 부모님의 산소자리를 정하게 된다.

신기리 술증 할아버지 산소 용산리 문영 할아버지 산소 용산리 고조부와 조부 산소

전통적으로 좋은 자리에 조상의 묘를 써야 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는 동기감응론(同氣感應論)으로 설명되고 있다. 이를테면 조상의 유골(遺骨)이 좋은 환경에 있으면 좋은 기를 발산하여 그 기운이 통하는 자손이 좋은 기를 받고, 나쁜 환경에 있으면 나쁜 기를 발산하여 자손이 나쁜 기를 받는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동기감응은 나이가 어릴수록 많이 받고, 나이가 들면 적게 받는다고 한다. 이것이 발음론(發蔭論)의 구체적 해석이다. 그런데 화장을 하면 자손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유골 고유의 에너지는 파괴되어 없어지므로 좋은 자리를 찾을 수 없는 바에야 차라리 화장을 하는 것이 조상유골이나 자손에게 좋다고 말한다.

승재 할아버지의 자손 그러나 살아 있는(survived by) 자손들로서는 돌아가신 부모님께 무언의 상담을 청하고 싶고, 앞서 말한 사례처럼 기사회생, 인생역전의 기회를 찾게 될지도 모른다. 적어도 고향에 부모님의 산소를 모셨다면 한식과 추석에 정기적으로 성묘를 하고 잔디를 다듬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마을사람들로부터 "명당자리면 뭘 해. 산소 위에 잡초만 무성한데"하고 빈축을 사게 될 터이기 때문이다.

용산리 행조 할아버지 산소 용산리 승재 할아버지 산소

운봉면 서천리(雲峰面 西川里)는 오랫동안 운봉 박씨(朴氏)의 집성촌이었다. 운봉에서는 한 때 1만5천명이 넘었던 인구가 감소하여 5-6천명에 불과한 가운데 박씨 집안 후손들도 다수가 대처(大處)로 떠나고 현재 35가구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비록 타성받이 타향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지만 운봉은 대대로 조상이 살았고 선영(先塋)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2002년 늦여름 태풍 때 운봉 수리조합의 제방이 무너져 그 아래 있던 조부님의 산소가 수해를 입는 바람에 이장(移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부님의 묘소는 고조부님의 산소 바로 아래에 모셨다. 주변에는 그 사이에 돌아가신 백부모님들의 산소가 있어서 산 하나에 모두 열두 분의 묘소가 집중되어 있는 셈이다.
다만, 산소를 쉽게 찾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견지에서 우리 부모님(萊玉公)과 두 분 숙부님(基丞公, 圭烘公)의 산소는 서울에 가까운 공원묘지에 모셨다.

운봉 서천리 큰집 운봉읍내 용산리 진입로 용산리 바래봉 진입로

2005년 5월 초 운봉의 뒷산인 지리산 바래봉(1165m)에서 철쭉 축제가 벌어질 때 선영의 관리를 전담하시는 장손 燮鏞 형님을 모시고 조상의 묘소를 찾았다. 우리가 정기적으로 성묘를 해야 할 조상의 묘소는 다음과 같다.
※ 운봉 연락처: 산지기(김원주 씨) 016-9977-1410

주옥 큰아버지 산소 가는길 주옥 큰아버지 산소 주옥 큰아버지 산소에서의 전망

▶ 박혁거세 57세손 述曾(술증)公 및 김해 金氏의 묘: 서천리의 북쪽인 신기리에 소재함
▶ 58세손 文瑛(문영)公 및 남원 晉氏의 묘(합묘): 서천리의 남동쪽인 용산리에 있음
▶ 59세손 行祚(행조)公 및 전주 李氏의 묘: 용산리 文瑛公의 묘소의 오른편 아래에 10여m 떨어져 있음
▶ 60세손 壬淳(개명후 升在)公 및 안동 金氏의 묘: 본래 景祚公의 3남으로 그의 사촌인 行祚公에 입양되었으며, 슬하에 6남 3녀를 두었음. 文瑛公의 묘소 아래에 자리하고 있음
▶ 61세손 湊玉(주옥)公과 파평 尹氏: 두 분 산소는 500m 떨어져 있음
琪玉(기옥)公 및 영천 李氏, 華玉(화옥)公 및 파평 尹氏의 묘: 두 분은 쌍둥이 형제로서 묘소도 마주보는 자리에 있음

기옥 큰아버지 산소 화옥 큰아버지 산소 화옥 큰아버지 산소에서 바라본 주옥 큰아버지쪽 전망

찾아가는 길

서울에서 운봉으로 가는 길은 두 갈래 코스가 있다.
일단 경부고속도로로 내려가다가 하나는 대전을 지나 대전-통영 고속도로로 해서 함양까지 간 후 88올림픽도로의 광주 방면으로 진행하여 인월 나들목에서 남원방면 국도를 타는 것이다. 3시간 20분 소요, 고속도로 통행료 12,600원.
다른 하나는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해 전주(익산) 나들목에서 나와 남원으로 가는 코스이다. 중간에 천안-논산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통행료 부담(7200원)은 있지만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다. 귀로에 이 코스를 이용하면 전주(신리) 죽림온천(063-232-8832)에서 온천욕을 하며 장거리 여행의 피로를 풀 수 있다. 막히지 않으면 3시간 50분 소요.

용산리 춘향 허브 마을 표지 정자앞 선영 진입로 선영앞 차 세울 곳

선영 진입로는 운봉 읍내에서 바래봉 축산단지로 가는 길목인 용산리에 있다. 포장이 잘 되어 있는 2차선 도로를 따라가면 춘향이 허브마을 표지가 붙어 있는 정자가 나온다. 정자를 왼편으로 하고 진행방향을 따라 좁은 길로 접어들면 운봉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자그마한 야산들이 나온다.
벼를 심은 계곡을 오른 편으로 하고 산길로 올라가면 좌우의 백부님들 산소를 지나 고조부님(文瑛公)과 조부님(升在公)의 산소를 모신 선영의 입구가 나온다. 증조부님(行祚公)의 산소는 조금 떨어진 왼편에 있다. 그리고 첫째 백부님(湊玉公)의 산소는 소나무 숲 앞에 차를 세우고 10분쯤 위로 올라가면 된다.

신기리 술증 할아버지 산소의 원경 술증 할아버지 산소에서 바라본 신기리 마을 술증 할아버지 산소 앞에서

현조부님(述曾公)의 산소는 신기리에 있다. 운봉에서 인월 쪽으로 가다가 이성계의 황산대첩비가 있는 비전마을 못 미쳐 신기리 마을로 접어든다. 1km 쯤 진행한 후 소나무 숲이 아름답게 우거진 야산의 입구 쪽에 자리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