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게 보낸 2005년 여름방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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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가 부러움을 사는 이유는 정년이 65세라는 것과 여름과 겨울에 두 달씩 방학이 있다는 것이다. 혹자는 이것 때문에 교수는 월급을 적게 받아도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남의 떡이 커보이게 마련"이지만 나 역시 좋은 직장으로 꼽히는 은행에 다니다가 누구나 선망하는 교수가 되었기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교수에게도 애환이 많다는 것을.

中正기념관 장개석 동상 앞의 의장대 교체식 고궁박물관 앞의 공자상

2005년 여름방학의 경우를 들어 교수로서 좋은 점을 살펴보자.
6월 말까지는 기말고사 채점과 성적입력, 학생상담, 대학원 학위논문 심사 등으로 영일이 없었다. 그러나 7월부터 시작되는 방학 중에는 기간에 구애받지 않고 학술대회 참석, 자료수집 등의 목적으로 해외에 나갈 수 있다.
나도 지난 6월 기말시험이 시작되면서 중국 단둥에서 열린 동북아물류 학술대회에 참석하였고, 7월 중순에는 타이페이에서 개최된 중국 兩岸關係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하면서 처음으로 타이완을 여행할 수 있었다.

양안관계 국제학술회의에서 사회를 보는 필자(사진 중앙) 장명봉 교수를 비롯한 국제학술회의 참석자 중국관계 전담 대륙위원회에서의 브리핑

대부분의 교수들은 집이나 연구실에 틀어박혀, 여유가 있으면 외국의 대학이나 연구소로 나가 연구와 자료수집에 몰두하기도 한다. 더욱이 가족을 만나러 해외로 나가는 '기러기 아빠' 교수들이 급증하는 바람에 우리 학교도 방학중에 실시되는 입학시험의 감독과 채점교수를 소집하기에 애를 먹을 정도이다.
그러나 해외여행 자체가 큰 메리트는 아니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휴가를 내어 해외여행을 다녀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학자들도 해외학술대회의 스폰서가 없으면 자비로 다녀와야 한다.
나 혼자만 해외여행을 다니는 것 같아 큰맘 먹고 7월 말에 집사람과 함께 3박4일 일정으로 홋카이도 온천여행을 다녀왔다. 도야(洞爺) 선팔레스호텔의 온천 노천탕에서 가랑비가 내리는 가운데 호반의 불꽃놀이 광경을 정신없이 바라보던 일이나, 노보리베츠(登別) 온천에서 유황 온천탕에 몸을 담그고 창 밖으로 펼쳐진 지옥곡(地獄谷)의 광경을 바라보던 일은 지금도 꿈속에서 다녀온 것만 같다.

타이완 엘리트의 요람 대만대 법률학원 입구 대만대의 아시아 르네상스 편액 외양과는 달리 내부에 초현대식 시설을 갖춘 대만 국립대 도서관

방학중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편히 지낼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메리트가 아닐 수 없다. 휴가조차 마음대로 쓸 수 없는 직장인들에게는 대단한 특혜로 비칠 것이다. 그러나 교수들의 방학은 완전히 놀고 먹는 기간이 아니다.
자기 전공분야의 연구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또는 다음 학기의 강의자료를 준비하기 위해, 아니면 의무적으로 요구되는 연구실적을 쌓기 위해 여러 편의 논문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 훈련이 안된 사람에게 타인을 설득할 수 있는 글을 쓴다는 것은 고문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학자는 20매의 원고를 쓰기 위하여 수십 배, 수백 배 분량의 국내외 문헌을 섭렵하고 정리하는 수고를 감수해야 한다.

오토바이가 홍수를 이루는 타이페이 거리 야경이 호화로운 타이페이 최고의 101빌딩 기암괴석이 많은 野柳해안공원의 클레오파트라 두상

내 경우 여름 방학 중에 작성하였거나 준비한 논문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 경희대 국제법무대학원장 윤명선 교수의 정년퇴임 기념논문집에 기고하기 위해 헌법재판소 결정을 평석한 논문 "금융구조조정 수단의 법적 성격"을 작성하면서 헌재 결정문 중에 중대한 오류가 있음을 발견하였다.
- 타이페이 학술대회 때 국립 대만대 교수가 남북교류협력법의 영문 해설자료가 있으면 좋겠다고 한 것에 자극 받아 [북한법연구]에 기고하기 위해 그에 관한 영문 논문을 작성하였다. 앞으로는 해외의 관심이 많은 이슈를 중심으로 1년에 4-5편의 영어논문을 쓸 작정이다.
- 8개국 전문가들과 함께 집필하고 있는 "Privacy at Forty"(주요국 프라이버시 보호법제의 변천과 그 전망)의 한국 편을 맡아 이미 1만6천여 단어의 영문 보고서를 제출하였고 계속하여 수정보완 작업을 하고 있다. 내년 1월 말에 이태리 벨라지오에서 열리는 국제회의에 참석하여 주제발표를 할 예정이다. (이상은 완성)

칼데라호인 도야 호수 안의 작은 섬 시코츠 호수의 정경 시코츠 호반 공원

- 기술과 법 연구소(대표 손경한 변호사)의 의뢰로 지적재산권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하는 방안과 이와 관련된 분쟁의 해결방법을 연구하여 8월 29일 1시간 발표를 하였다.
- 8월 30일 개최되는 북한법연구회의 "분단 6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북한 외국인투자법령의 변천과 평가에 관하여 주제발표를 하였다.
- 8월 31일 학교 내부적으로 준비하는 "로스쿨 대비 특성화 방안"에 대하여 조사 발표를 하였다.
- 한국금융연수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금융법률용어사전] 편찬작업에도 참여하였다. 내가 맡은 금융법률용어는 170개로 여러 필자 중에서 제일 많다. (이상은 작업 완료)

유주산 분화구 앞의 필자 부부 1943년에 새로 생겨난 활화산인 쇼와신잔 사명감으로 쇼와신잔을 관측하였던 미마츠 마사오 기념관

- 전에 함께 일했던 산업은행 동북아센터의 조사역들과 공동으로 "남북경협에 소요되는 자금의 효과적인 조달방안"을 연구하여 10월중에 보고서를 발간하기로 했다.
- 금융법학회에서 수행하고 있는 [은행법 주석서] 발간작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 10월 말에 개최되는 국제거래법학회 국제학술대회에서 채권의 전자등록에 대하여 주제발표를 맡기로 했다.
- 그밖에 2학기에 강의할 회사법과 IT법, 국제거래법의 교재를 준비해야 한다.
- "전력산업의 민영화 좌초비용(Stranded Cost)의 유동화"에 관한 학술진흥재단 연구과제는 연말까지 발표하면 되므로 뒤로 미루기로 했다.

7호 태풍이 지나간 홋카이도의 하늘. 가로의 화살표는 폭설이 내렸을 때 대비한 도로폭 표시장치 이영애 뮤직비디오로 유명한 오타루의 오르골관 오타루의 운하

위와 같이 여러 편의 논문을 쓰고 있지만 모두 돈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학술지에 적잖은 게재료를 내면서 기고를 하는 것도 많다.
그러나 논문 한 편 한 편이 학자로서의 실력과 명예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믿기에 무리를 감내하고서 많은 자료를 뒤적여가며 쉬지 않고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별다른 의도 없이 홈페이지에 게재하였던 영문원고가 계기가 되어 프라이버시에 관한 국제컨퍼런스에 초청을 받게 된 것처럼 순수한 학문적 열정은 좋은 결실을 맺을 것으로 확신한다.
가장 괴로운 것은 다른 사람들이 방학중의 대학교수는 시간이 남아 돌 것이라고 당연히 여기는 일이다. 내용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분초를 다퉈가며 이러저러한 논문을 쓰고 있다고 설명하는 것도 구차스럽다.

온천탕에서 바라다보이는 지옥곡 풍경 축구운동장보다 더 큰 조잔케이뷰 호텔의 부페식당 꽃들이 만발한 삿포로 시내공원

사촌형님 박훤구 박사의 별세

7월 30일 사촌형님(전 노동연구원장 박훤구 박사)이 심장마비로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 여러 날 빈소를 지키고 장지까지 따라갔다.
고인에 대한 도리상 당연한 일이었지만,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음에도 모두 뒤로 미루고 장례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인은 같은 "훤"자 돌림자를 쓰는 사촌으로서 누가 "훤"자를 잘 못 읽을 때면 "박훤구 박사"를 모르느냐고 반문하곤 했다. 이와 같이 고인은 우리 집안의 자랑이었고 필자가 뒤늦게 박사공부를 할 때 벤치마킹의 대상이었다. 고인은 "훤"자를 영어로는 "Fun"이라고 표기하는 등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분이었다.

고인은 경기고, 서울대를 거쳐 미네소타대에서 경제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78년부터 KDI 연구원을 시작으로 우리나라 노동분야의 최고전문가로서 청와대와 노동연구원, 김&장 법률사무소에서 맹활약하였다.
1996년부터 2000년까지 가장 어려운 시기에는 노동연구원장을 하면서 IMF 극복과 노사정 대화합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뛰어다녔다.
정동교회의 권사이던 고인은 58세 생신을 며칠 앞두고 주말 아침 테니스를 하다가 갑자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Funeral service of Late Fun K. Park 수원공원묘지의 장례식 선친 곁에 묻힌 고 박훤구 박사

8월 들어서는 1학기 수시입학시험의 감독과 채점위원으로 연속 나흘 학교에 꼬박 감금되다시피 하여 연구일정에 적잖은 차질을 빚었다. 그렇다고 누구에게 위와 같은 내 사정을 하소연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교수가 스트레스를 안 받는다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는 말이다. 교수들도 연말이 되면 연구실적, 봉사실적으로 고과를 받고 1급 학술지에 논문을 일정 편수 이상 발표하지 못하면 승진에도 지장이 있다. 내 경우 은행원의 절반도 못되는 교수 월급을 보충하기 위해서는 적잖은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외부 강의와 원고청탁을 거절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오랫동안 위계질서가 강한 직장생활을 했던 나로서는 한 가지 좋은 점이 있다. 아니 이것 때문에 교수 할 맛이 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내가 쓴 글, 내가 하는 일에 아무도 간섭을 못하고 일단 존중부터 해준다는 것이다. 내가 만든 보고서나 결재문서에 볼펜부터 잡고 수정을 지시하는 상사가 없기에 때로는 허전함(?)을 느끼기조차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