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기독교의 관점에서 본 세계역사

"땅끝의 시계탑" 상.하권(홍성사 1991.5-6)을 쓴 김성일(1940- )은 깊은 성경지식을 토대로 [제국과 천국] 등 10여 편에 달하는 기독교 소설을 발표해 온 중견작가이다. 서울공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대우건설의 해외건설 현장을 누비는 건설 맨이었다.
저자는 서울올림픽 직후에 탈고한 이 소설을 통해 작가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하나님의 세계역사에 대항하는 적그리스도의 계략을 보여주고 있다. 바로 적그리스도의 출현을 대망하고 이를 준비하고 있는 가상 단체인 '가나안 조직'의 비밀집회를 통해 그 지도자는 조직원들에게 다음과 같이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가나안 조직은 상당 부분에 있어서 그레이엄 핸콕의 [Sign and Seal], 댄 브라운의 [Da Vinch Code] 등에서 볼 수 있는 '일루미나티', '프리 메이슨'을 연상케 한다. 니콜라스 케이지의 [National Treasure] 같은 허황된 스토리의 영화도 있는 터에 성경의 비밀을 전 세계를 무대로 펼쳐 보인다는 점에서 영어로 번역되었더라면 전 세계의 많은 독자를 얻고 영화로도 만들어졌을 거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뮌헨 비밀집회에서의 가나안 조직 지도자의 연설

에베소에 있던 아르테미스 신전의 Artemis. 유방이 여럿인 다산(多産)의 신이었다 왜 가나안 인들은 멸시천대를 받아야 했던가? 결코 그럴 수 없다.
가나안 인들은 뛰어난 장사꾼의 솜씨를 발휘하여 부를 축적하는 한편 막강한 정보력을 손에 넣었다. 가나안 인들은 마침내 니므롯을 내세워 함의 제국인 바벨론을 건설하였던 것이다.
[가나안이 저주를 받은 배경은 무엇이었던가? …… 저 무서운 홍수의 심판이 지나간 후 노아는 다시 농사를 시작하여 평안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하루는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그의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 채 잠이 들었다. 노아의 둘째 아들이며 가나안의 아비인 함이 아버지의 장막에 들어갔다가 그 벌거벗은 것을 보고 밖에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이 사실을 고했다. 그 말을 듣고 셈과 야벳은 덮을 것을 어깨에 메고 뒷걸음으로 장막 안에 들어가 아버지의 몸을 덮어주었다.
술에서 깬 노아는 이 사건으로 계시를 받아 세 아들의 장래에 대해서 수수께끼 같은 예언의 말을 남겼다. "셈은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며,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이 때 둘째 아들 함의 이름 대신 그 아들 가나안의 이름을 들었는데 아마도 가나안이 함의 네 아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가나안의 후예들은 모든 나라들 간의 상품 교역에 관여하면서 뛰어난 장사꾼의 솜씨를 발휘하였다. 가나안이라는 그 이름 자체가 바로 장사꾼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 뛰어난 장사의 재능과 정보력으로 막강한 세력을 손에 쥐었으며 마침내 함 집안의 영웅 니므롯을 내세워 셈의 장자권을 뒤엎고 함의 제국인 바벨론을 건설하였던 것이다. 함에게는 본래 구스, 미스라임, 붓, 가나안의 네 아들이 있었는데 니므롯은 구스의 아들로서 사냥꾼이었다.
홍수가 지나간 이후 여호와 하나님은 살아남은 노아의 가족들에게 먹을 것이 없었으므로 육식을 허락하였다. 사람들이 육식을 시작하면서 모든 동물들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약육강식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때때로 힘이 강한 맹수들은 사람까지도 습격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먹이를 구하기 위하여 사냥을 하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맹수들을 퇴치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무기들을 고안해 내야 했다. 이 무기의 제조와 사냥에 뛰어났던 인물이 바로 니므롯이었던 것이다.]

막강한 재력과 정보망을 손에 쥐고 있던 가나안 가문은 니므롯을 내세워 셈 집안의 장자권에 도전했고 마침내 바벨론 제국을 건설하게 되었다. 그 후 니므롯의 바벨론 제국은 셈 집안의 세력을 괴멸시키고 메소포타미아 일대의 평야를 모두 장악하였다. 가나안은 지중해 연안을 점령하여 그곳을 무역의 중심지로 삼았으며 미스라임과 붓도 나일 강 유역을 확보함으로써 마침내 전 세계는 함 집안의 세력에 들어가게 되었다.
[가나안의 집안이 셈의 장자권에 도전했던 것은 바로 여호와에 대한 도전이었다. 노아가 아무런 이유없이 가나안을 저주했던 까닭에 이에 순응할 수 없었던 가나안 인들은 반기를 들었던 것이다. . . 가나안이라는 이름은 바로 장사꾼을 의미하였다. 그만큼 가나안은 정보에 밝은 인물이었다. 함이 노아의 장막에 들어갔다가 노아의 벌고벗고 있음을 형제들에게 알린 행위는 바로 정보의 전달이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함이 그 아비의 장막에 들어간 것부터가 수상한 행위였다. 그가 장막에 들어간 무엇인가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장사꾼은 정보로써 돈을 벌게 되어 있다. 정보를 기억하고 분석하는 기능이야말로 인간에게만 특별히 주어진 능력이었다. 그러나 노아는 그 아들 함이 정보의 힘으로 아비의 수치를 드러내게 했을 때 저주를 퍼부었던 것이다. ……말세에 나타난다는 적그리스도도 결국은 정보로써 인간을 통치하게 될 터였다…….]

가나안은 4천4백년 전에 여호와의 장자권을 뒤엎었고 여호와 신을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가나안은 그들 마음대로 신들을 만들어내었고 별들마다 신들의 이름을 불렀다. 이에 따라 장자권자로 군림하던 셈 집안은 산산조각이 났고 그들 중의 일부는 울면서 아라랏을 넘어 북방으로 떠나갔다.
[이 대목은 한민족과도 관련이 있다. 셈 집안의 일부는 우랄 산맥을 넘고 시베리아를 지나 바이칼 호를 건넜다. 동쪽을 향하여 긴 유랑을 계속하던 그들은 바이칼 호의 동쪽에서 산들에 둘러싸인 대평원을 발견하고 그들이 살았던 메소포타미아를 생각하면서 그 곳에 정착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정착한 새 땅에서 여전히 하나님을 섬기고 장자권을 존중하며 살았다. 장자권자는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으로 축복의 권한을 승계하고 공동체의 모든 일들은 존경받는 장로들이 처결했다.]

가나안이 셈 집안을 뒤엎은 이유는 그들이 장자로서의 임무를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물려받은 권리와 권위만을 행사하고 모든 가문을 돌보아야 하는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 그들은 메소포타미아의 비옥한 땅들을 독점하였고 백성들의 노동에 상응하는 공정한 분배를 행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백성들의 것을 제물의 명분으로 착취하였다. 가나안은 장자권을 비호하는 보이지 않는 여호와의 통치 대신 보이는 인간의 지혜와 능력과 신념을 택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마치 가인과 아벨의 사건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었다. 장자권자인 가인이 아벨에게 충분한 양식을 분배하지 않았으므로 아벨은 자기가 기르고 있던 양으로 제물을 대신하였던 것이다.]

셈 집안의 일부는 아라랏을 넘어서 북방으로 떠나갔고, 야벳 집안의 일부가 그들을 따라갔으나 대부분의 셈 집안 백성들은 메소포타미아에 남아서 가나안의 통치를 거부하고 항거하였다. 셈 집안의 지도자가 바로 아르박삿 족속에 속하는 에벨이었는데 그는 셈 집안의 흩어진 세력을 규합하여 하란 지방에 왕국을 세우고 잃어버린 장자권의 회복을 도모하다가 가나안에게 섬멸 당했다.
[에벨은 셈 집안 최후의 장자권자였다. 그는 장자권의 회복을 위해 항전하였으나 결국 가나안의 한 지파인 햇의 공격을 받아 멸망하고 말았다. 그후로 에벨의 후손들은 자기들을 '히브리 사람'이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에벨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었다.]

그 때 마침 갈대아 우르에 살던 아브라함은 아비와 함께 에벨이 자리잡았던 하란으로 돌아와서 살다가 아비가 죽은 후에 가나안 지방으로 잠입해 들어갔다. 그의 가세는 점점 창성해졌고 그 후손들 70명은 메소포타미아와 에집트에 닥친 7년 대한발 때 에집트 지도자의 도움을 받아 에집트로 이주하였다. 그로부터 세월이 얼마 흐르지 않아 놀랍게도 2백만이 넘는 큰 민족으로 불어나게 되었다.
함 집안인 에집트 왕실은 그들의 수가 불어나고 그 세력이 커지게 되자 그들을 피라밋 공사와 각종 건설공사에 동원하여 굴레를 씌우고 그들이 낳는 사내아이들을 죽임으로써 그 수가 더 이상 불어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그들은 모세라는 지도자를 따라 한꺼번에 에집트를 탈출하는 데 성공하였다. 홍해를 건너서 광야로 들어선 그들의 목적지는 바로 가나안 땅이었다. 그들은 어쩐 일인지 40년이 넘도록 광야를 배회하며 가나안 땅을 곧바로 쳐들어오지 않았다.
그들은 마침내 에집트에서 탈출한 지 40년이 되던 때에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으로 진입하였다(BC1406).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지 685년만이었다. 여호수아를 선두로 물밀 듯 들어온 그들에게 가나안 족속은 힘없이 무너졌다. 가나안 인들은 참담한 패배 속에서 후일을 기약하고 기회를 노릴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그 기회는 왔다. 솔로몬이 여호와 신을 위하여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할 때 . . . 에집트 왕실이 그들에 했듯이 가나안 족속을 성전공사에 동원하였다. 15만명의 가나안 인들은 힘든 노역을 견디며 기회를 노렸다. 그리고 솔로몬이 죽자 공사감독이던 여로보암을 선동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여로보암은 열두 지파 중에 열 지파를 포섭하여 이들을 이끌고 북쪽으로 올라가 새로운 왕국을 세웠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의 분열 뒤에는 가나안 세력의 음모가 있었던 것이다. 본래 히브리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진입할 때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나안의 모든 생명들을 진멸하라고 지시했었다. 그러나 가나안의 거의 모든 지역을 점령한 그들은 마음이 해이해져서 살아남은 가나안 사람들을 진멸하지 않고 그들을 자신들의 몸종으로 삼았다.]

가나안 세력은 북 이스라엘 왕국의 실권을 장악하고 아합 왕을 위협하여 가나안의 혈통인 이세벨과 결혼하게 했다. 이세벨은 가나안의 신들을 섬기게 했으며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모두 잡아 죽였다. 또 그녀는 남 유다 왕국과의 화해를 빙자하여 자기 딸 아달랴를 유다 왕 여호람에게 시집보냈다. 그 아달랴의 활약으로 마침내 남쪽 왕국도 가나안의 신들을 섬기기 시작했다.
결국 둘로 갈라졌던 히브리 왕국은 함 집안의 제국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당했다. 그 후 히브리 사람들은 바벨론으로 끌려가 70년간 포로 생활을 했다. 그들은 바벨론을 정복한 페르샤 왕 고레스의 배려로 유대 땅에 돌아오지만 계속해서 야벳 집안인 페르샤, 헬라, 로마의 지배를 받으며 살았다.
바벨론의 패권은 야벳 집안의 페르샤, 헬라를 거쳐서 로마로 넘어갔으나 가나안 인들은 이스라엘 왕국의 실권을 잡았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가나안 인들은 그들로 하여금 가나안의 잘 생긴 신들을 섬기게 하였고 예루살렘 성전 건축의 경험으로 최고의 석공 기술자가 된 가나안 인들은 그들의 성전을 짓는 데 초빙되었다. 가나안 인들은 막강한 정보력으로 그들의 정치와 경제를 장악했고 그들을 통하여 가나안 제국의 이상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순조롭게 진행되던 가나안의 세계 지배에 하나의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바로 유대 땅에 예수라는 이름의 사내가 나타난 것이다. 이 사내는 돈도 무력도 가지지 않은 평범한 목수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을 가지고 가나안에 도전했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고 선언하면서 스스로 하나님의 장자권자임을 주장했다. 그는 가나안 체제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회개하고 물로 세례를 받으라고 말했다. 그는 전혀 로마나 헤롯 정권을 비난하는 정치적인 선동을 하지 않았다. 그는 모든 정치적 체제 뒤에 가나안의 세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가나안 세력은 결국 그의 제자들 중에서 하나를 매수하여 그를 고발하게 했고 유대종교의 지도자들로 하여금 자기네들의 율법으로 그를 체포하게 했다.
그러나 그를 처형했던 것이 큰 실책이었다. 그를 살려 두었으면 그는 유대의 흔한 선지자 중 한 사람으로 끝났을 텐데 그를 처형했기 때문에 오히려 전 세계의 장자권자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그의 제자들은 모든 나라마다 돌아다니면서 그의 가르침을 전하고 그가 무덤에서 다시 살아났다고 선전했다. 마침내 로마 시민의 절반 이상이 그 목수의 비밀제자가 되기에 이르렀다. 무력도 없고 재력도 없는 그리스도인들은 혹독한 박해 속에서도 로마 시민들을 그들의 공동체로 끌어넣었던 것이다. 그들 가운데는 일반 시민들은 물론이고 원로원 의원이나 황제의 친척들, 심지어는 집정관급의 최고급 관리들까지 들어 있었다.
예수의 제자이면서 가나안에 협력하고 있던 요한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가나안과 점점 멀어지다가 나중에는 배신하고 본격적인 예수쟁이가 되었다. 그가 밧모 섬에 유배되어 갔을 때 그는 가나안의 전략을 낱낱이 폭로하는 계시록을 썼다. 그는 그 글에서 가나안의 조직이 모든 사람의 이마에 번호를 찍으라는 계획까지 폭로하였다.

그 때문에 계획에 차질이 생긴 가나안 조직은 더 큰 계략을 수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점점 더 커지는 그리스도인의 세력과 손을 잡기로 하고 로마 제국 속에서 그 실세를 장악했던 것처럼 그들의 세력 안에서 그들이 섬기는 예수의 이름으로 온갖 공작을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 그들 내부에서 교회의 지도자들을 타락시키고 교회를 가나안 식으로 통치했으며 성경을 읽지 못하게 하고 교회의 이름으로 온갖 무리한 일들을 손쉽게 처리하였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교회의 이름으로 셈의 무리들을 쓸어버렸던 십자군 원정이었다. 가나안 조직은 십자군들로 하여금 가는 곳마다 유대인의 여자들을 강간하게 하여 그들의 피를 섞어 놓았다. 결국 그들의 가계는 모계 중심으로 바뀌었고 장자권자의 사상은 뿌리가 뽑혔다. 그로부터 가나안의 후손들은 자연스럽게 유대인들 속에 섞여 들어가 지탄받을 만한 모든 일들은 유대인의 이름으로 시행하였고 세상에 큰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그 탓을 유대인들에게 뒤집어 씌워서 그들을 속죄양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것은 참으로 엄청난 계략이었다. 결국 유대인들은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가나안 사람들을 살려두었기 때문에 그 후 3천년 동안 계속해서 고난을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토록 고지식하고 계율적인 유대인들이 어떻게 해서 유능한 장사꾼으로 변신하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결국 영악한 장사꾼들은 유대인들이 아니라 그들 가운데 섞여 있던 가나안 세력이었던 것이다.]

가나안 세력은 교회 조직 속에 잠복하여 오랜 동안 세계를 손쉽게 지배하였으나 마틴 루터라는 자가 교회 안의 문제들을 폭로하며 종교개혁 운동을 일으킨 뒤로 가나안 조직은 또 한 차례 큰 위기를 맞게 되었다. 전 세계는 다시 예수에게로 돌아가자고 외치는 새로운 예수쟁이들의 선동으로 뒤덮였고 가나안 조직은 그 엄청난 기세에 몰려서 마침내 비장하고 있던 최후의 전략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가룟 유다를 포섭해서 예수를 잡았던 것과 같은 전략이었다.
가나안 세력은 가나안 후손이 주류를 이루고 있던 자본가들로 하여금 토지를 매점하고 가난한 자들을 압제하도록 한 다음, 오랜 수난으로 불만에 차 있던 유대인의 지식인 중에서 몇을 포섭하여 가룟 유다와 같은 신념의 종교를 만들게 했다. 그것이 바로 칼 마르크스, 레닌, 트로츠키 등을 시켜서 만들어낸 공산주의라는 새로운 종교였다. 이 새로운 종교는 70년간이나 세계를 휩쓸었고 가는 곳마다 예수쟁이들을 잡아죽였다.
그러나 가나안 조직이 이미 예측했던 대로 이 비상대책은 약효가 오래 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전 세계가 동서로 나뉘어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 동안 가나안 세력은 시간을 벌었고 마침내 모든 준비를 완료하였다.
모든 인민의 정보를 입력하여 그들의 영혼을 잡아가둘 수 있는 컴퓨터 시스템과 전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는 전자통신 시스템이 완성되었고 사람의 이마에 흔적없이 번호를 넣을 수 있는 레이저 가공기술도 완성단계에 이르렀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전세계에 자유와 혼란의 바람이 불게 하는 것이다. 빈부의 차이가 더욱 극도에 달하게 하고 마약과 범죄가 전 세계에 퍼지게 하며 모든 인민으로 하여금 새로운 지도자를 갈망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가나안 조직은 새로운 제국을 선포하고 가나안의 지도자는 세계의 모든 인민 앞에 위대한 평화의 실천자로 등장하는 것이다. 이제 세계정부의 실현을 위하여 목숨을 걸어야 한다.
[실제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대통령은 바벨론의 재건을 위해 그 상징인 이쉬타르 문의 복원에 착수하고 바벨탑과 공중정원의 설계를 검토하였다. 이쉬타르는 바로 가나안의 아스다롯에서 유래한 바벨론의 여신으로 성적인 음란을 합리화시키는 다산의 여신이었다. 아스다롯은 나중에 헬라로 가서 아르테미스가 되었고 로마에서는 다이아나가 되었던 것이다. 이 이쉬타르 문에는 목과 꼬리가 길고 다리가 넷 달린 짐승이 조각되어 있었는데 이것은 바로 용을 나타낸 것이며 창세기에 나오는 뱀, 즉 사탄의 원형이었다.]
(출처: 김성일 장편소설 "땅끝의 시계탑" 상권 234-243면에서 인용하였으며 문맥에 따라 일부 자구만 수정함)

이 소설을 읽고 나니 왜 철저한 기독교인인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만난(萬難)을 무릅쓰고 이라크를 공격하고 후세인 대통령을 축출하였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때로는 저자의 상상력이 너무 비상하여 독자로 하여금 "믿거나 말거나" 하는 기분이 들게 할 수 있지만 성경을 통해서 세계 역사를 이렇게 조망할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무엇보다도 어찌하여 하나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가나안 원주민과 가축들을 진멸하라고 하셨는지, 마지막 때에 왜 이마에 '666'의 인을 절대로 쳐서는 안 되는지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