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날

오후 1시 올란도 공항에 도착하여 모노레일을 타고 터미널로 가서 짐을 찾은 후 렌트카를 하기로 했다. 뉴왁 공항에서 허츠 예약부로 전화를 걸었을 때 소형차에서 고급 대형 승용차까지 고루 갖춰져 있다는 말을 들었으나 정작 렌트카 카운터에서는 일제 소형차 밖에 없다는 답변이었다. 포드 토러스를 빌리려고 왔지만 모처럼 일제차도 한 번 몰아보고 싶었다.

처음에 빌린 니산 센트라는 트렁크에 짐을 실을 수가 없어서 한 등급 올린 마스다 626을 빌리기로 했다. 91년 신형 흰 색 마스다였다. 카 스테레오가 없어 갖고간 테이프를 들을 수 없는 것 빼놓고는 크루즈 콘트롤까지 달려 있는 주행거리 620마일 밖에 안된, 출고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 차였다. 기뻐하는 아이들을 태우고 플로리다 대장정에 올랐다.

공항을 벗어나 플로리다 턴파이크에 접어드니 종려나무, 야자수가 연변에 늘어서 있는 완전히 이국적인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다습한 아열대성 기후에 피부가 벌써 끈적거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플로리다에 왔구나!"
미리 예약해둔 키시미에 있는 레코드 모텔에 들어가니 어디선가 향긋한 내음이 풍겨왔다. 모텔 주인은 할머니였는데 미국 사람들이 은퇴한 후 플로리다에서 모텔을 하는 게 소원이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소형 냉장고까지 갖춰진 방에 여장을 풀고 한시도 허비할세라 MGM 스튜디오부터 구경에 나섰다.

디즈니월드로 가는 진입로는 마치 대도시로 들어가는 고속도로와 같다. 그림 잘 그리던 꿈많은 청년(월트 디즈니)이 성공적인 기업인으로 변신하여 모기가 들끓던 늪지대를 세계적인 관광휴양지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MGM 스튜디오 들어가는 길에는 미키 마우스가 '까꿍!' 하는 모습의 도로 안내판이 서있어 벌써부터 아이들이 탄성을 지르게 만들었다.

주차장의 규모도 어마어마했다. 어느 곳에 차를 세우든지 조금만 걸으면 모빌 트레인이 메인 엔트런스까지 실어나른다. 자칫하면 자기가 어느 곳에 차를 세워두었는지 깜박 잊을 수 있으므로 안내원이 어느 지점에서 트레인을 탔는지 거듭 확인시켜 준다.
"이 곳을 잊으시면 다른 손님들이 다 빠져나갈 때까지 그 넓은 주차장을 헤메고 다녀야 합니다."

디즈니 월드 첫날 밤의 불꽃놀이 주제별로 세 곳으로 나뉜 테마 파크를 샅샅이 구경하기 위해 420불을 내고 4일짜리 패스를 끊었다. 디즈니 씸 팍을 제대로 구경하려면 수많은 전투를 치뤄야 한다. 다른 관광객들과의 줄서기 싸움, 제한된 공개시간과의 싸움(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부활절 직후라 폐장시간을 밤 10시 또는 11시로 연장하여 다소 여유가 있었다), 하나라도 더 많이 보려는 아빠와 다리 아프다고 보채는 아이들과의 싸움 등.

우리 식구도 간간히 아이스 크림도 먹어가며 인디아나 존스 촬영 세트도 구경하고 왕년의 헐리우드 名畵도 감상하며 쉴 새 없이 돌아다녔다. 그런데 그날 밤 11시 폐장시간에 맞춰 불꽃놀이를 한다지 않은가! 첫날부터 무리할 필요없이 아이들 잘 시간도 넘었으니 모텔로 돌아가자는 집사람을 간신히 설득하여 MGM 스튜디오 중앙에 자리잡은 中國 극장(오리지날은 물론 헐리우드에 있으며 그 앞 보도에 스타들의 손바닥, 발바닥 사인이 있는 것으로 유명함) 앞에 자리를 잡았다.
예고된 시간이 가까와 오자 중국극장앞 광장은 그 시간까지 남아있던 수많은 관광객들로 메워졌다.

밤 11시가 되자 여러 개의 서치 라이트가 밤하늘을 갈랐다. 이어 디즈니 영화음악들에 맞춰 형형색색의 불꽃이 하늘에서 춤을 췄다. 만화영화에 영화음악을 접목시켜 헐리우드 영화의 新境地를 개척하였던 '마법사의 제자'도 울려나왔다.
그저 단순한 '불꽃놀이'(firework)가 아니라 '밤하늘의 마술'(sorcery)이었다. 디즈니의 상상력 플러스 관광객들을 유치하려는 미국식 商業주의가 빚어낸 걸작이었다. 나는 밤하늘에 펼쳐지는 멋진 장면을 갖고간 캠코더에 담기에 여념이 없었다. 5분여 동안의 현란한 쇼가 끝나고 자리를 털고 일어설 때 나는 입장료가 과히 비싼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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