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째 날

4월 8일 아침 야자수가 우거진 마이애미 비치를 찾았다. TV 드라마 마이애미 바이스가 연상된 탓인지 아니면 이미 데이토나 비치를 보고온 탓인지 별 감흥은 일지 않았다. 그러나 강렬한 태양 아래 쪽빛으로 빛나는 바다물은 더없이 아름다왔다. 내가 詩人이라면 멋진 詩 한 수가 흘러나올 수 있는 정경이었다. 비스케인 만에 즐비한 스페인 양식의 고급 별장들, 한가로이 떠 있는 요트들.

우리는 현대식 빌딩들이 촘촘히 들어서 있는 다운타운을 거쳐 비스카야 맨션을 찾아갔다. 산업혁명과정에서 큰 돈을 번 부자들이 19세기말∼20세기초 이른바 黃金의 시대에 자신의 富와 敎養을 과시하기 위해 몇 백만불씩 들여 지은 맨션이 이곳에도 있었다. 비스카야의 주인은 농기계 제조판매로 막대한 재산을 축적한 제임스 디어링이었는데 그가 獨身으로 죽은 뒤 유산을 상속받은 조카들이 맨션을 유지.관리할 능력이 없자 일부 동산은 처분하고 카운티(Dade)에 기부를 한 것이었다.

이태리 르네상스風의 건물에 유럽의 값비싼 가구와 조각, 양탄자가 거의 옛모습대로 전시되어 있었다. 건물 내부는 본래 露天式이었는데 귀중한 문화재를 비바람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지붕을 유리로 덮고 에어컨으로 온습도를 조절하게 되었다고 한다. 관광객들은 아무곳이나 돌아다닐 수 없고 자원봉사자들의 통제하에 안내를 받게 되어 있었다.

우리 식구는 서둘러 다음 행선지인 앵무새 정글로 갔다. 완전히 사람 손에 길들여진 무지개 색깔의 앵무새들이 관광객들로부터 해바라기씨를 받아먹었다. 큰 아이도 머리와 양팔에 앵무새를 여러 마리 얹어놓고 사진을 찍었다. 공연장에서는 잘 훈련된 앵무새들이 핫팬츠 아가씨의 지시에 따라 갖가지 묘기를 보여주었다. 저런 微物도 훈련을 받으면 자전거도 타고 셈도 하고 노래도 잘 부르는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은 교육만 잘 받으면 못할 일이 없는 것이다. 여기 찾아온 사람들은 앵무새 쇼를 보며 감탄만 할 게 아니라 데리고 간 자식들 교육을 어떻게 시킬 것인지 마음에 다짐을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마이애미서부터는 1번 국도를 타고 키 웨스트로 내려가기로 했다. 대장간에 식칼이 없다는 속담처럼 우리 식구는 본고장 플로리다에 와서도 오렌지를 제대로 먹어보지 못한 걸 깨달았다. 이미 4시가 넘어 키 웨스트 가는 여정이 촉박하기에 오렌지 주스로 갈음하기로 하고 다른 먹을 것과 함께 스치로폴 아이스 박스를 가득 채웠다. 홈스테드 공군기지 주변에서는 한국 식품점도 눈에 띄었다. 미군 병사와 국제결혼한 고국 음식을 잊지 못하는 한국 여자가 주된 고객이리라.

Key West 키 웨스트 가는 길은 대낮에도 헤드 라이트를 켜야 한다. 키 라르고까지는 별볼 게 없었으나 섬과 섬을 연결하는 연육교를 하나씩 건널 때마다 풍광이 달라졌다. 세븐 마일 브리지를 달릴 즈음에는 서녘 하늘 한 구석에서 안드로메다 같은 저녁놀이 빛났다. 하늘에 구름이 많이 끼었으나 태평양 건너 멀리서 온 우리가 키 웨스트의 석양을 조금은 감상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키 웨스트 시내에 접어든 것은 완전히 어둠이 덮힌 뒤였다. 상세한 지도 없이 작은 글씨의 가로표시만 보고 예약한 모텔을 찾아가기란 쉽지 않았다. 사방을 헤매고 다닌 끝에 간신히 블루 말린(Blue Marlin) 호텔을 찾아 방에 들었다. 모텔 종업원은 이런 일이 예사라며 상세한 지도를 내주었다. 알고 보면 매우 좁은 바닥이므로 안내가 필요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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