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CLA 로스쿨 및 미국 사회 견문기(2)


2007년 3월부터 2008년 2월까지
교수로서 처음 맞는 연구년(Sabbatical)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2001년 가을부터 1년간 미국 보스턴에서 방문교수를 한 인하대 윤진호 교수
미국 대학이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면서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는 "지식의 디즈니랜드"라고 말했다.
나도 UCLA 로스쿨 안팎으로 다니면서 지적 재충전 작업은 물론 미국 사람과 사회를 탐구하는 일을 하고자 한다.
그 결과는 윤진호 교수가 제안한 것처럼 에피소드 별로 A4 용지 1장 정도로 요약하여 40편 이상 이곳에 올릴 작정이다.
내 스스로도 10여년 전 SMU에서 공부하던 때와 여러 모로 비교가 될 것 같다.(2007.3)

목     차
프롤로그
로스쿨 모의재판 경연대회
미국은 현대판 카스트 사회?
세 번만에 붙은 운전면허 시험
미국의 자동차문화
25년만의 재회: 이철수 심포지엄
UCLA 로푸키 교수의 명강의
우수교수 시상식의 주인공은 한국인 교수
Nobless Oblige: 말리부 게티 빌라
세계가 놀라는 한국인의 디아스포라
로푸키 교수와의 인터뷰

의지의 한국인 석세스 스토리
어느 한국인의 비극적인 몰락
지역사회에 기여해야 대학도 산다
익사이팅한 고속도로 자동차 여행
살아 움직이는 미국 사법제도
라스베가스를 석권한 태양의 서커스
동화 같은 성을 쌓은 랜돌프 허스트
통제불능의 헐리웃 연예인들
미국의 REAL ID 논란 [이상 Part I]
로스쿨 졸업생 취업대책 [이하 Part II]
CNN 현장보도의 기린아 앤더슨 쿠퍼

헐리웃 볼에서의 핑크 마티니 공연 관람
캘리포니아에서 활기를 띠는 줄기세포연구
미국에서도 화제인 한국인의 교육열풍
미국 로스쿨 졸업생들, 희망 끝 고생 시작
다양한 산업이 발전하고 있는 LA 지역
변모하는 미국 사회의 인종구성
유태인과 닮은 듯 닮지 않은 한국인
'잊게 해야 한다'는 프라이버시 특강
법학교수와 '학문의 자유' 논란
법학교수들의 지뢰밭 - e메일과 블로그
거침없이 빚을 지는 미국의 법대생들

LA의 또 다른 명물 월트 디즈니 콘서트 홀
여성지휘자의 LA 필이 연주한 교향곡 신세계
쉽고 감동적인 조엘 오스틴 설교, 비판도 만만치 않아
UCLA 로스쿨 제리 강 교수와의 대화
미국은 소비자들의 천국
부동산대출 부실로 한인교포 은행들 고전
롬니 전 주지사는 진짜 '경제대통령' 후보
헐리웃을 뒤덮은 작가조합의 스트라이크
미국에서 꼭 가봐야 할 곳
미국의 대통령 경선
에필로그

미국 로스쿨의 졸업생 취업 대책

UCLA 로스쿨 졸업생의 로펌 취업현황표 8월 20일 UCLA 로스쿨의 가을 학기가 시작되었다. 졸업생들이 떠난 자리에서 신입생들이 와글와글 떠드는 가운데 대형 로펌의 취업설명회 공고가 게시판에서 시선을 끈다. 로스쿨 현관에는 재학생 및 졸업생들의 미국 유수 로펌에의 취업현황이 '경마'를 하는 도표로 게시되어 있다.

미국에서는 로스쿨을 졸업하고 정부기관이나 기업, 시민단체(NPO)로 가는 사람도 적지 않지만 아무래도 로펌에 취업하는 숫자가 제일 많다. 로펌에 들어가면 업무는 고되어도 대형 로펌 초임 변호사의 연봉은 최근 16만불을 넘어섰다. 지난 5-6년간 법률시장은 꾸준한 성장세를 보여 왔으며, 최근 들어 로스쿨 졸업생의 90%가 졸업 후 6월 내에 취업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므로 2, 3학년 때 유수의 로펌이 학교에 찾아와 면담하는 회수가 많을수록 취업률이 올라가게 마련이다. 미국의 로스쿨들은 학교의 명성(예컨대 US News & World Report에서 매년 발표하는 학교 랭킹) 못지 않게 캠퍼스를 찾아와 인터뷰(OCI: on-campus interview)를 하는 로펌의 숫자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예컨대 뉴욕에 있는 포댐 로스쿨은 샴페인에 있는 일리노이 로스쿨과 US 뉴스의 순위는 25위로 같지만 지리적인 이점 때문에 일리노이 로스쿨의 2배가 넘는 150개 로펌이 찾아온다. 대형 로펌들이 제일 많이 찾는 로스쿨은 워싱턴에 있는 조지타운 로센터이다. 2007년 가을에도 280개 로펌이 OCI 취업설명회를 가질 예정이다.
대부분의 로펌은 20명을 면접하면 그 중에서 3-6명을 우선 선발하고, 나머지는 추후에 인터뷰(call-back interview)를 하게 된다. 그 결과 60% 정도가 여름에 로펌에서 인턴 변호사(summer associate)를 하게 되는데 그 중 90%가 정식으로 채용되고 있다. 그만큼 캠퍼스 취업면접기회가 많을수록 졸업생들의 취업율이 올라가는 것이다.

문제는 미국 전체 183개 로스쿨 중에서 조지타운과 같은 상위 25개 로스쿨이 100여개 로펌들의 OCI 기회를 독차지하고, 119개 학교는 30개도 안 되는 로펌이 찾아올 뿐이라는 것이다. 이들 25개 로스쿨은 21개가 US 뉴스의 랭킹 25위 안에 드는 명문교들이다. 대형 로펌의 채용담당자들이 캠퍼스를 찾아가 면접을 할 때 학교의 명성을 크게 고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교의 명성은 높아도 대형 로펌들이 잘 찾지 않는 로스쿨도 있다. 예컨대 예일은 워낙 학생 수가 적은 데다 외진 곳(뉴욕과 보스톤의 중간지점인 코네티컷주 뉴헤이븐)에 자리잡고 있어 OCI는 18위에 그쳐 있다. 반면 워싱턴 DC에 소재하고 학생 수도 많은 조지타운이나 하워드는 US 뉴스의 순위는 낮지만 많은 로펌들이 찾아온다. 그러니 대형 로펌들이 많이 찾는 25개 로스쿨 중 17개 학교가 워싱턴, 보스톤, 뉴욕, 필라델피아, 시카고, LA, 샌프란시스코 같은 대도시에 있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들 학교의 순위는 www.njplonline.com, www.vault.com/lawschool 에서 찾아볼 수 있음)

그렇다고 학교의 명성(prestige), 소재지(location), 학생수(size)가 유수 로펌의 선호도를 좌우하는 것은 아니다.
가톨릭 재단의 학교인
디트로이트 머시(University of Detroit Mercy)는 특성화 전략에 입각한 커리큘럼과 마크 고든 학장(Dean Mark Gordon)의 지도력에 힘입어 대형 로펌들이 앞다퉈 채용하는 명문교(job-hunting powerhouse)로 탈바꿈하였다(Wall Street Journal 관련기사).
고든 학장은 2002년에 취임한 이후 3학년 과정에 로펌 프로그램을 도입하였다. 학생들은 실제 상황을 방불케 하는 기업법무실무(simulated corporate transaction) 과목을 2개 이상 이수해야 하며, 실제로 로펌에서 벌어지는 소송, 노사문제, 부동산, 공정거래, 지재권 문제를 다루게 된다.
고든 학장은 유수 로펌에서 은퇴한 변호사들(이들은 또 Dean's Advisory Board를 구성)을 강사로 초빙하여 실제 상황과 똑 같이 수업을 진행하도록 했다. 그리하여 로스쿨에서 공부하는 것과 법조 실무에서 일어나는 것을 일치시킴으로써 큰 성과를 거두었다. 자연히 디트로이트 머시 로스쿨의 입학지원자수도 지난 3년간 30%나 급증했다고 한다.

그 나머지 학교들도 가만히 앉아서 로펌들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리지는 않고 있다. 이를테면 취업알선기구를 통해 우수 학생들이 인턴십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이력서를 관계기관에 배포하거나, 무료 화상회의시설을 이용해 로펌 담당자가 학생들을 면담할 수 있게 하는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참고자료: Ursula Furi-Perry, "Do law firms LOVE your law school?", National Jurist, Sep. 2007, Vol.17, No.1, pp.30-36.)

CNN 현장보도의 기린아 앤더슨 쿠퍼

2007년 4월 버지니아텍에서 총기 참사가 벌어졌을 때 세계의 언론이 현장에서 보도를 하는 가운데 유독 눈길을 끈 리포터가 있었다. 그는 감정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쉴 새 없이 사건 전말을 보도하고 있었는데, 젊어 보이지만 흰머리를 하고 고개가 약간 삐딱한 채 말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가 바로 CNN의 간판 프로 "360°"의 진행자 앤더슨 쿠퍼(Anderson Cooper)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소말리아 종족분쟁, 사라예보·보스니아 내전, 쓰나미가 덮친 스리랑카 해변, 이라크의 바그다드, 카트리나가 휩쓸고 간 뉴올리안즈 등 큰 사건 현장마다 쫓아다니며 전세계의 시청자들을 감동시킨 발로 뛰는 저널리스트(globe-trotting reporter, 1997년 ABC 방송의 다이아나 왕세자비의 장례식 현장보도로 에미상을 수상함)였다.

Memoir of Anderson Cooper 뉴욕타임스의 베스트셀러에도 올랐던 그의 회고록(Dispatches from the Edge, 2006) 첫머리에는 가슴 아픈 개인사가 소개되어 있었다. 그의 어머니(철도왕 밴더빌트 가의 상속녀이고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인 Gloria Vanderbilt)는 상류층 인사들과의 교제가 많았는데(모친의 두 번째 남편은 유명한 지휘자 스토코프스키였음) 그가 11살 때 아버지가 심장 수술을 받다가 돌아가시고 그로부터 10년 후에는 형마저 과도한 스트레스를 못 이겨 자살했다는 것이다.
그에게는 무엇으로도 보충할 수 없는 상실감의 극복이 그의 삶의 과제가 되었다. 그리고 위기가 닥쳤을 때 어떤 사람은 살아남고 어떤 사람은 죽는 현실(Why do some people thrive in situations that others can’t tolerate?)을 파헤쳐 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내면의 고통을 외부 세계의 고통스러운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위로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2007년 8월 초 여름 휴가로 TV에서 잠시 눈에 띄지 않았지만, 아니나 다를까 8월 말에는 카트리나 참사 2주년을 맞는 뉴올리언즈에서 쉴 새 없이 말을 하면서 주요 인사들을 인터뷰하는 그를 다시 볼 수 있었다.
그는 아버지 서재에 있는 큰 지구의를 돌리면서 세계에는 많은 나라와 인종이 살고 있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예일대에서 저널리즘이 아닌 정치학과 국제관계학을 전공하였는데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이야기꾼(
storyteller)의 기질과 유머 감각으로 TV 저널리즘의 기린아가 되었다.

그러한 앤더슨 쿠퍼가 독서를 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경미한 난독증(mild dyslexia)이 있다는 것은 전혀 뜻밖이었다. 그가 TV 토크쇼에 나와 스스로 밝힌 사실이지만 예일대를 나오고 청산유수로 말을 하는 그에게도 남 모르는 고민이 많았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뉴스 보도를 하는 데스크에는 기사원고가 아니라 노트북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40세가 되었는데도 아직 미혼인 것은 그가 '게이'이기 때문이라는 소문도 있다. 내가 보기에는 워낙 자유분방했던 모친에게 너무 데어 그런 것 같지만(그가 태어났을 때 작가인 그의 아버지와 네 번째 결혼을 한 모친은 마흔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돈 많고 인기 많은 사교계의 여왕이었음) 돈도 잘 벌고(CNN에서의 연봉이 4백만달러라고 함) 스마트하게 생긴 남자에 대한 선망과 시기심의 발로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던 그가 9월 4일 주목할 만한 인터뷰를 하였다. 그의 뉴욕 스튜디오에 디나 맥그리비(Dina McGreevey) 전 뉴저지 주지사 부인을 초청하여 그의 남편(Jim McGreevey)이 사임하던 날의 소감을 물어본 것이다. 아이다호의 크레이그(Larry Craig) 상원의원이 미네아폴리스 공항 화장실에서 동성애자 같은 행동을 한 게 문제가 되어 가족들을 둘러세우고 의원직 사퇴의사를 밝힌 직후였다.
앤더슨 쿠퍼의 성적 정체성(sexual orientation)을 의심하는 사람들은 기분이 묘했을 것 같다. 그는 섹스 스캔들로 낙마한 미국 정치인의 사례로서 2004년 자신이 게이임을 커밍아웃하고 사임한 짐 맥그리비스 전 뉴저지 주지사의 사례를 소개했다. 그런데 포르투갈 이민자인 왕년의 뉴저지주 퍼스트 레이디는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악몽이 시작되었다"고 당시의 상황을 회상하며 그 자리에 나란히 서야 했던 배우자로서의 고통과 번뇌(pain and anxiety)를 참담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빼어난 미모의 그녀는 미국 성공회(Episcopal Church) 신부가 되려는 별거 중인 짐 맥그리비스와 어린 딸의 양육권 문제를 놓고 다투고 있는 중이다.
그의 모친 역시 어린 나이에 막대한 신탁재산의 관리와 양육권을 둘러싸고 외할머니와 고모할머니 사이에 벌어진 법정싸움의 중심에 있었던 것을 잘 알기에 인터뷰를 하는 앤더슨 쿠퍼의 심정도 착잡했을 것 같다.

헐리웃 볼에서의 핑크 마티니 공연 관람

The Shell of Hollywood Bowl LA에 살면서 꼭 해야 할 일 중의 하나가 여름철에 헐리웃 볼(Hollywood Bowl)에서 열리는 공연 관람이라고 한다. '보시기(bowl)'라는 말 그대로 헐리웃 언덕의 경사면에 타원형으로 만들어진 공연장(amphitheater)이다.
헐리웃 볼에서는 주로 가벼운 분위기에서 들을 수 있는 클래식 공연이 많은데 종종 한국 가수들이 교포 위문공연을 갖기도 한다. 그 동안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다가 아파트단지의 ESL 회화선생으로부터 여름 시즌 마지막 공연을 보러 가는 게 자기네 가족의 전통이라는 말을 듣고 부랴부랴 티켓을 예약하였다.
여름 마지막 공연을 보름 앞둔 터라 거의 매진된 상태였는데 핑크 마티니(Pink Martini)라는 재즈 그룹의 연주를 인터넷을 통해 예매할 수 있었다. 헐리웃 볼은 멀찍이 차를 주차해 놓고 셔틀버스를 타고 가야 하므로 집에서 가까운 헐리웃 불르바드/하이랜드 애브뉴 환승주차장에 차를 세우기로 했다.

Street scene in front of China Theater at Hollywood Blvd 9월 14일(금) 저녁을 일찌감치 먹고 헐리웃 거리부터 구경에 나섰다. 마침 주차장이 마침 중국극장(China Theater) 바로 옆이어서 구경거리가 많았다. 극장 앞 보도에는 유명한 배우들의 손바닥과 구두를 찍어놓은 기념패널이 즐비했고, 인기영화에 나오는 캐릭터들이 분장을 하고 관광객들과 사진을 찍었다. 정말 조니 뎁 비슷하게 생긴 캐러비언 베이의 '스패로우 선장'도 거리를 어슬렁거렸다.

이날 공연은 흑인 지휘자 토마스 윌킨스(Thomas Wilkins)가 지휘하는 헐리웃 볼 오케스트라(LA교향악단을 야외공연에 적합하게 편성한 것)가 경쾌하게 카르멘 환상곡(Carmen Miranda Fantasy) 등 클래식 소품을 연주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지휘자는 한 곡 한 곡 끝날 때마다 간단한 해설을 곁들였다.
헐리웃 볼의 앞쪽은 테이블까지 있어 웨이터가 음식 시중을 들고 있었고, 우리가 앉은 뒤쪽은 나무 벤치에 앉아 피크닉 박스에 채워 온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먹으면서 공연을 즐길 수 있었다. 피자를 여러 판 들고 와서 함께 나누어 먹는 그룹도 많았다. 헐리웃 볼은 음향도 썩 좋았지만, 무대 양옆으로는 대형 스크린이 두 개씩 무대를 보여주고 있어 뒤에서도 관람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드디어 오늘 공연의 주인공인 14인조 핑크 마티니(www.pinkmartini.com)가 등장했다. 이 그룹은 대표 겸 피아니스트인 토마스 로더데일(Thomas Lauderdale)이 하버드대학 동창인 차이나 포브스(China Forbes)를 보칼로 하고 관악과 현악, 타악을 적절히 배합하여 1994년에 창단한 밴드이다.
이들은 흘러간 빅밴드 뮤직을 영화음악으로 많이 편곡하여 세계적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 오늘의 레퍼토리는 옛날 보스톤의 코코넛 그로브에서 연주되었던 1930년대부터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의 경음악과 영화음악들이었다.

Fireworks at Hollywood Bowl 리드 보칼은 하버드대 학사 출신답게 구사하는 언어만 해도 영어는 물론 불어, 이태리어, 스페인어 등 종횡무진이었다. 이들은 대표곡 "Hey, Eugene"도 열창하였는데, 처음에는 연인의 이름 "Eugene"을 "You're cheating"(거짓말이야)으로 잘못 알아들었음에도 뜻은 대강 통하는 듯 했다. 또 "Amado Mio"를 부를 때에는 옆자리의 동반자에게 속삭이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중간에는 80, 90이 넘은 왕년의 명가수 할아버지(Henri Salvador)와 할머니(Carol Channing)가 나와 노익장을 과시하였는데 우리는 그들의 곡을 알 수 없었지만 노.장년층 관객들은 노래를 따라 부르며 매우 흥겨워했다.

이날의 클라이맥스는 라벨의 볼레로(Volero) 연주에 맞춰 불꽃과 폭죽이 터지는 장면이었다. 기대했던 것만큼 큰 스케일의 폭죽놀이는 아니었지만 효과음악처럼 음악에 맞춰 불꽃들이 계절이 바뀌는 밤하늘을 수놓았다.
오늘 공연은 밤 8시 반에 시작하여 10시 50분에 모두 끝났다(중간에 20분 인터미션). 우리가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헐리웃 불르바드 주차장으로 돌아오니 주차시간이 늘어난 탓에 주차요금으로 10불을 내야 했다(위쪽에 자리한 L석 티켓은 [$27+수수료]/인)

캘리포니아에서 활기를 띠는 줄기세포연구

9월 10일 UCLA 학교 주차장에 들어가는데 새로운 안내판이 보였다. 기부금 증정식 기자회견장에 오는 참석자들을 위한 주차안내 표지판이었다. 무슨 컨퍼런스나 음악회 같은 학교 행사는 이처럼 주차장 안내표시를 보고 아는 경우가 많다.
UCLA 의과대학 입구의 브로드재단 행사 주차안내 표지판 라디오에서는 슈워제네거 주지사와 비아라이고사 LA시장, 학교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브로드 재단(Eli and Edythe Broad Foundation)에서 UCLA의 줄기세포 연구를 위해 2천만달러(185억원)를 기부하는 증정식이 있을 거라는 뉴스를 전했다.

금번 기부금을 계기로 UCLA에서는 줄기세포생물의학연구소(Institute for Stem Cell Biology and Medicine)의 이름을 '브로드 재생의학 줄기세포연구센터'(Eli and Edythe Broad Center of Regenerative Medicine and Stem Cell Research)로 바꾸고, 기부금도 연구실험장비 도입과 우수 연구자 지원에 쓸 예정이라고 했다.
브로드 재단에서는 2006년 2월 남가주대(USC) 의과대학에 25백만달러를 기부한 바 있으니 대학간에 선의의 경쟁을 붙이는 것 같다. 브로드 씨는 기자회견을 통해 캘리포니아가 줄기세포 연구를 선도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이들 대학의 연구성과를 보아가며 향후에도 더 많은 기부를 할 의사를 밝혔다.

현재 미 연방정부는 생명침해의 소지가 있는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자금지원을 규제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이에 반발하여 2004년 주민투표에서 찬성을 얻은 '71 제안사업'(Proposition 71, 일명 "California Stem Cell Research and Cures Act")의 일환으로 파킨슨씨병, 당뇨병 등의 치료를 위한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총 30억 달러의 자금을 지원할 예정이다.
지난 5월 캘리포니아 주대법원에서는 71 제안사업의 위헌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주정부가 공채를 발행하여 그 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지금까지 주정부 대여금이나 기부금에 의존해온 대학들은 연구비를 타낼 수 있는 길이 더 넓어진 셈이다.

LA에 있는 유대계 세다-시나이병원(Cedars-Sinai Medical Center)에 갔을 때에도 곳곳에 기부자들의 명패가 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 지난 5월에는 작년에 뇌종양으로 작고한 쟈니 코크란 변호사(Johnnie L. Cochran, Jr. 그 자신이 OJ 심슨 살인사건 변호에도 관여하였던, 미국 서부에서 제일 유명한 인신상해-의료사건전문 흑인변호사였다)를 기려 그 유가족이 뇌종양(brain tumor) 연구를 위해 5백만달러를 기부한 것을 가지고 병원 내에 코크란 뇌종양센터가 설립되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유방암 퇴치 모금운동의 일환으로 거리에 붙인 핑크리본 배너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핑크리본' 캠페인은 에스테 로더 화장품 회사가 시작한 유방암 퇴치(breast cancer awareness)를 위한 전세계적인 모금운동이다. 사실 미국 교수들은 공공재단은 물론 민간재단의 연구비(grants)를 끌어오는 일이 커다란 실적으로 꼽힌다.

미국의 돌아가는 사정과는 정반대로 우리나라에서는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국가적 성원을 보내다가, 논문조작 사건을 계기로 그의 연구성과를 일체 부정해 버리고 정부연구비를 용도 외로 쓴 것을 가지고 몇 년씩 재판이 벌어지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정부 연구비 타 쓸 때 자칫하면 '국민의 혈세' 횡령범이 될 각오를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연구성과가 중요한데도, 연구결과물에 대한 평가는 뒷전이고 그 돈을 가지고 회식비로 얼마나 썼냐, 소속 연구원에게 얼마 주었냐는 것부터 따지고 들기 때문이다.
우리 교수들도 일일이 영수증을 첨부하지 않고도 마음껏 연구를 할 수 있는, 일반기업이나 민간재단의 연구비 지원이 크게 늘어났으면 하는 바램이다. UCLA에 거액의 기부를 한 재단 설립자의 이름(Broad)이 더욱 크고 넓게 느껴졌다.

미국에서도 화제인 한국인의 교육열풍

LA에서 살면서 미국의 언론이나 주민들을 대해 보면 한국인은 여러 가지로 기록을 세우는[record making] 민족이다. 한국인들의 "빨리 빨리"란 말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이며[the opposite end in the spectrum might be African-Americans], 그 부지런함은 이곳 정치인들도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their diligence overwhelmed the Jewish immigrants].
지난 9월 13일 LA 한인타운을 방문한 민주당 클린턴 상원의원도 단기간에 60만불이 넘는 모금을 해준 한인 지지자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현재 미국에 공부하러 온 학생은 조기유학생을 포함하여 10만명을 넘어섰고, 이들이 쓰는 돈은 한국에 대한 무역적자를 상당부분 해소하고 있다.

지난 4월 버지니아 공대의 조승희 사건은 조용한 줄만 알았던 한국인들이 화나면 무섭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the ferocity surprised the Asian gangs]. 사실 미국에서 이름을 날리는 한국인으로는 반기문 UN 사무총장을 비롯해, 고홍주 예일대 로스쿨 학장, 강영우 백악관 장애인위원회 정책차관보, 이희돈 WTCA 수석부회장, 손성원 LA한미은행장 등 셀 수 없이 많다[the most emerging ethnicity in the U.S.].
UCLA 치과대학장 박노희 교수 재미 언론인 이영아 씨가 취재한 "미국을 빛내는 한국인"만 해도 50명이 훌쩍 넘는다. UCLA에도 구강암의 세계적 권위자인 박노희 치과대학장, 여러 차례 우수교수 표창을 받은 로스쿨의 제리 강 교수 등 여러 분이 있다. 11월 6일 전기공학자인 스티브 강 교수는 2005년에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으로서 10번째로 설립된 연구전문 대학인 머시드 분교(Univ. of California, Merced)의 총장(chancellor: 10개의 분교를 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은 전체로서 president가 있고 각 분교마다 chancellor가 있다)으로 취임하였다.

LA 타임스 10월 23일자 기사("Rethinking an emphasis on achievement" B2면)를 보면 한국인들의 지나친 교육열기는 자녀들에게 과도한 스트레스를 안겨주고 종종 비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실상을 전했다. 기사에 소개된 다음의 에피소드는 미국인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보여준다.
지난 여름 캘리포니아 주립대 리버사이드 분교의 에드워드 장 교수는 LA 코리아타운에 있는 교육문화회관에서 30여 교포 고등학생들을 모아놓고 "리더십과 정체성"(leadership and identity)에 관한 강의를 한 후 "버지니아테크 총기난사 사건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을 던졌다. 모두들 묵묵부답. "그가 한국인이라는 것이 문제가 되느냐"는 질문에도 아무 대답이 없었다.
장 교수는 미국에서 성장한 교포 학생들의 DNA에도 "어른들 말씀에 감히 토를 달지 않는" 한국식 유교전통이 남아 있다(Confucian upbringing)고 진단했다.

그 결과 삼강오륜식 권위를 강조하는 것이나 향학열이 높은 것은 좋지만, 종종 부모-자식간에 갈등을 초래하고, 아이비 리그 학교에 못 들어가면 아예 공부를 못하는 것으로 치부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곤 한다는 것이다. 사실 LA 지역만 해도 고등학교 중퇴자가 태반(흑인과 히스패닉 청소년들의 학업포기는 사회문제가 될 정도이다)인데, 버클리대나 UCLA에 입학하려면 스트레이트 'A'를 받아야 하고, UC 리버사이드만 해도 상위 10% 안에 들어야 한다.
또 공부만 잘 해도 합격하는 것은 아니다. 버지니아테크의 조승희 총기난사 사건이나 스탠포드대학 기숙사에서 수개월간 가짜학생 노릇을 한 어느 교포학생의 케이스는 한국이민 자녀들이 받는 스트레스의 상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LA 타임스는 그래도 많은 한인 가정에서는 1.5세대, 2세대 자녀들이 미국식 환경에서 장성함에 따라 타협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리하여 의사, 변호사, 회계사 같은 부모가 원하는 '사'자 붙은 직업 대신 자녀들의 적성에 맞고 그들이 원하는 경찰관 같은 직업을 택하도록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로스쿨 졸업생들, 희망 끝 고생 시작

9월 24일자 월스트리트저널은 제1면(A1)에서 로스쿨 졸업생들의 형편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A law degree isn't necessarily a license to print money these days)고 전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일부 졸업생의 경우 로스쿨에 다니면서 빌려쓴 대출금이 10만불을 넘어섰으나, 취업이 날로 어려워져 의료보험도 없이 시간당 20-30불을 받고 일하는 계약 변호사(contract attorney with no benefit)도 수두룩하다고 한다.

WSJ지는 법률시장의 성장이 경제성장의 절반도 못된다고 보도했다 그 원인은 1980년대까지 급성장세를 보였던 법률시장이 1988년 이후 20년 동안에는 GDP 성장률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성장을 보여 전반적으로 변호사들의 일거리가 줄어든 반면 로스쿨은 196개로 늘어나고 매년 4만3천여 명의 JD취득자가 배출됨으로써 수급의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대도시 대형 로펌의 잘 나가는 변호사들의 수입은 크게 늘었지만, 75%에 이르는 대다수의 변호사들은 인플레를 감안한 실질소득이 줄어들었다. 졸업생의 14%가 진출하는 정부기관이나 공익단체의 경우에는 그 소득증가율이 미국 평균가계의 소득증가율의 절반에 불과했다. 다시 말해서 1980년대까지만 해도 누구나 선망하던 고소득 직종이던 변호사가 90대 이후에는 다른 직업에 비해 수입이 별로 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졸업 후 고소득을 예상하고 일단 학자금대출(student loan)을 받아 썼으나 수입이 기대에 못 미치는 바람에 심지어 월급의 60-70%를 빚 갚는 데 쓰고 허덕허덕 하는 변호사도 많다고 한다.

로스쿨 졸업생의 55-58%가 진출하는 개업변호사(private practice)의 경우 경기를 많이 탄다. 호황 때는 부동산 기타 자산거래 건수가, 불경기 때는 파산사건의 수임이 많아진다. 그런데 최근 들어 주마다 인신상해(personal injury) 사건, 의료사고(medical malpractice)의 집단소송, 타주 원고에 의한 소송을 규제하고, 증시의 활황으로 증권관련 집단소송이 격감함에 따라 일거리가 크게 줄었다.
오직 대기업을 상대하고 국제거래와 금융거래를 취급하는 대형 로펌들만 형편이 좋아졌을 뿐이다. 대형 로펌에서는 학생대출을 많이 쓴 우수 졸업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금년 들어 초임변호사의 연봉(starting salary)을 16만불로 올렸다.

상황이 이렇게 부익부 빈익빈(rich getting richer, poor getting poorer)으로 흐르자 로스쿨에서는 일부 고소득 졸업생을 기준으로 한 평균연봉을 PR할 게 아니라 시급제 변호사까지 포함한 실태를 파악해 학생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자성론이 일고 있다. 학생들에게 장밋빛 환상을 불러일으켜 막연한 기대감에 학자금대출을 얻어 쓰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만 현재 그렇게 하는 로스쿨은 거의 없다.
최근 들어 로스쿨 졸업생들이 평균 8-9만불에 이르는 빚더미(debtor's prison)에 올라앉은 것은 학교측이 등록금을 엄청나게 올렸기 때문이다. 로스쿨의 등록금 인상폭은 지난 20년간 물가상승률의 3배를 넘어섰다.

이제 2009년 3월에 오픈할 한국의 법학전문대학원도 다음 한 가지만큼은 확실하다.
많은 학생들이 커다란 기대를 걸고 비싼 등록금을 납부하고 로스쿨에 들어올 것이다. 그러나 3년 후에 시험에 합격하여 변호사 자격을 따더라도 누구나 부러워할 정도의 첫 월급을 받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하물며 시험에 낙방하고 고학력에 걸맞는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현실이 지옥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그 절반의 책임은 학교와 교수가 나누어 져야 할 터인데 이를 어쩐다? 국내에서 변호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법적 다툼이 크게 늘어나도록 부추기거나, 뉴질랜드처럼 변호사를 해외로 수출하는 길이라도 찾아야 할 것인가.

다양한 산업이 발전하고 있는 LA 지역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의 보좌관과 유럽개발은행(EBRD) 총재를 역임한 자크 아탈리는 그의 새 저서 [미래의 물결]에서 로스안젤레스는 앞으로도 태평양 연안의 거점도시로서 계속 발전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뉴욕이 갖지 못했던 실리콘 벨리와 항공산업을 보유하고 있으며, 헐리우드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이끄는 인재들과 뛰어난 아티스트들이 모여 있고 정보통신기술의 발명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이곳에서 발명된 인터넷과 휴대폰은 새로운 노마드(디지털 기기로 무장한 지적 유목민) 시대를 열었다.

LA에서 1년 가까이 살아보니 LA를 중심으로 한 남가주 지역(Greater Los Angeles)은 매우 활력이 넘치는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우선 토지가 비옥하고 기후도 농작물 재배에 유리한 데다 저임의 노동력이 풍부하여 오래 전부터 농업이 발달하였다. 일찍부터 항공산업, 영화산업이 발전하였고, 소득수준이 높은 도시 지역을 기반으로 다양한 제조업과 서비스업이 발달하였다.
또 큰 항구를 끼고 있어 태평양 연안국가인 일본, 한국, 중국, 인도와의 교역에서도 새로운 업종이 발생하고 있다.

LA 타임스는 10월 23일자 특집 "Made in LA"에서 LA 지역에서 활기를 띠고 있는 여러 제조업종을 A에서 Z까지 소개했다. 중국 등 해외수입품의 저가공세에 시달려 부침을 겪기도 했지만 첨단기술을 적용한 고가화 전략과 다양한 수요에 부응하는 맞춤생산으로 활로를 개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LA 카운티에는 종업원 250인 이하의 중소기업이 제조업체의 3분의 2에 달하는데, 이들 기업이 대부분 활기차게 운영되고 있어 미국 어느 곳보다도 고용기회가 많고(462,300개의 일자리) 숙련된 노동력이어서 임금수준도 평균치보다 14%나 높다고 전했다.
다만, 택지개발 등의 영향으로 타 지역보다 새로운 공장부지를 확보하기가 어려운 데다, 기업에 대한 규제가 많고 에너지 가격이 높은 것은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지적했다.

* Manufacturing A to Z
Automobile wheels(자동차 바퀴), Boxes(포장용 카드보드 상자), Coffins(목재 및 금속 관), Denims(청바지용 데님), Electric guitars(고급 전기기타), Floor coverings(카펫 등 바닥재), Guard booths(방탄 경비초소),
Hot dogs(핫도그용 식자재), Integrated circuits(반도체, 전자제품), Jewelry(주얼리 등 장신구), Kibble(애완동물 사료), Lights(LED 등 조명기구), Mannequins(디스플레이 마네킹), Novena candles(제례용, 장식용 초),
Optical equipment(전자식 의안, bionic eye), Plates(접시 등 식기류), Queen-size mattresses(침대용 매트리스), Ramen(라면), Soap(고급비누), Transmission cables(하이테크 케이블), Umbrellas(야외용 파티오 양산),
Vitamins(비타민, 식이용품), Weights(피트니스용 바벨), X-ray apparatus(X레이 기기), Yogurt(핑크베리, 레드망고 등의 요거트), Zamboni(스케이트장 얼음표면 정빙기)

변모하는 미국 사회의 인종구성

LA의 유명한 관광명소 Farmers Market과 The Grove에 이웃해 있는 PLB 아파트 단지 LA에 몇 달 살다 보니 미국 사회의 이면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가 미국 사회의 인종구성과 분포였다. 내가 사는 Park La Brea 아파트단지는 2층짜리 가든하우스와 12층 타워형 아파트로 구성된 모두 4,222세대가 사는 미국에서도 보기 드문 큰 아파트 단지(2차 대전 당시 제대군인들의 주거안정 대책으로 건설되어 1945년에 완공되었음)이다.
렌트비가 만만치 않기에 주민들은 연금으로 렌트비를 커버할 수 있는(렌트비 연 인상률이 5%로 제한돼 있어 오래 살수록 싸짐) 백인 노인이 많고, 미국에 새로 자리를 잡는 아시아와 유럽계 이민자들이 많다. 우리가 사는 고층아파트는 1/3이 한국 이름을 가진 입주자들이다. 그러나 흑인(African-American)이나 히스패닉(Latino)은 아주 극소수이다. 말하자면 렌트비가 입주자들의 인종구성을 결정지은 셈이다.

그러나 큰 길(3rd Street)을 건너 팬퍼시픽 공원에 가보면 늘 멕시코인들이 한 편에서는 축구를 하고 피크닉 에리어에서는 가족 단위로 몰려와 바비큐를 해먹으며 놀고 있다. 집이 비좁으니 시간이 나면 공원으로 뛰쳐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주변의 주택단지에는 유태인들이 많이 산다. 곳곳에 유대회당(synagogue)과 유대음식을 파는 상점(대표적인 것이 주로 유기농 청정식품을 취급하는 Trader Zoe와 Erewhon)들이 많은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1970년대 초 백인 인구는 전체 인구 중 88%였고 라틴계와 아시아계는 합해서 1.4%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1980년대에는 백인 인구는 80%대로 줄어들고, 라틴계와 아시아계는 10% 가까이 늘어났다.
1995년에 이르러 백인은 73%, 라틴계 11%, 아시아계가 4%를 차지했고, 몇 년 전부터 라틴계 인구가 14%를 넘어 흑인인구를 추월했다. 이런 추세라면 2050년에는 백인 53%, 라틴계 24%, 흑인 15%, 그리고 아시아계 9%가 될 것이라고 한다(김봉중, 미국은 과연 특별한 나라인가?, 소나무, 2001).

이미 라틴계 인구의 증가는 미국의 정치나 사회에 큰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했다.
2008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가장 큰 쟁점 중의 하나가 영어 외에 스페인어도 공용어로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대통령 입후보자들은 라틴계 유권자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이름부터 스페인어로 읽어야 하는 라틴계 정치인들과의 친분과 유대를 과시하고 다닌다.
또 국토안보부(DHS: Dept of Homeland Security)에서는 불법체류자(undocumented immigrant)를 단속하기 위해 애쓰지만 고용주들은 저임의 노동력을 제공하는 이들이 없으면 사업을 못한다며 각종 소송과 청원을 통해 그 시행을 늦추려 애쓰고 있다.

당초 불체자들에게도 운전면허증을 발급하기로 했던 뉴욕 주지사(Eliot Spitzer)는 이민사회의 찬사를 받고, 이 때문에 많은 캘리포니아의 불체자들이 대거 뉴욕으로 몰려갈 채비를 했었다. 그러나 뉴욕주에서도 REAL ID법*의 시행을 강행하려는 DHS와 반이민자 그룹의 압력에 못 이겨 2008년 말부터 체류신분에 따른 여러 종류의 운전면허증(multi-tier driver license)을 발급하기로 했다. 이는 주로 멕시코와 아시아계인 불체자들이 설 땅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 REAL ID Act :
2005년에 제정된 이 법률(정식 명칭은 Emergency Supplemental Appropriations Act for Defense, the Global War on Terror, and Tsunami Relief, 2005)은 9.11 사태가 미국에서 운전면허증을 쉽게 취득한 불법체류자에 의해 비롯되었다고 보고, 이를 막기 위해 운전면허증과 같은 신분증의 발급 시 출생증명서(외국인은 여권), 사회보장번호(Social Security Number) 등의 서류를 제출하게 하고 있다.
2007년 3월 시행될 예정이었으나 이민자단체와 중소기업인들의 반대, 그밖의 여러 사정으로 인해 연기되고 있다. DHS는 각 주와 협상을 벌여 구체적인 시행을 서두르고 있는데, 이 법에 따라 연방정부기관은 2009년 12월 31일 이후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운전면허증 등의 신분증을 받지 못하게 된다.

한국도 조만간 비자면제국이 되면 많은 관광객들이 미국에 몰려올 것이다. 그러나 그 중에 체류기간을 넘겨 계속 미국에 눌러 앉을 사람들에게는 미국은 '기회의 땅'이 아니라 '배척하고 착취하는 나라'가 될 공산이 큰 것이다.

유태인과 닮은 듯 닮지 않은 한국인

LA에서 여러 달 지내면서 이해의 폭을 상당히 넓힌 것이 유태인들이다.
필자의 전공분야인 프라이버시권(right to privacy)을 남의 간섭을 받지 않고 '홀로 있을 권리'(right to let alone)라고 최초로 정의한 루이스 브렌다이스(Louis Brandeis)가 나중에 윌슨 대통령에 의해 연방대법관이 된 최초의 유태인이었고, 또 필자를 UCLA로 초청해준 린 로푸키 교수도 유태인, 아파트 단지 내 ESL 회화교실의 자원봉사 교사인 지타 할머니, 린 아주머니 역시 유태인이기 때문이다. 회화교실 시간에 유태인들은 크리스마스를 기념하지 않고 12월 달에 하누카(Hanukkah 성전정화기념 빛의 축일: 2007.12.4-11)를 8일간 지킨다고 했다.

아닌게 아니라 한국인과 유태인은 신기할 정도로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우리 스스로도 '동양의 유태인'이라는 말을 곧잘 한다.
실제로 한민족이 이스라엘의 사라진 한 지파였음을 학술적으로 규명하려는 진지한 노력이 있었다. 예컨대 서울대 총장을 역임한 유기천 박사는 그의 영문 저서 [World Revolution, 1997]에서 한국인과 유태인은 29가지의 공통점이 있다고 주장하였다(최종고 교수, [Law and Justice in Korea, 2005, p.367). 유 박사는 인류학적으로 접근하였으나, 최근에는 문화고고학적으로 이를 입증하려는 실증적인 노력도 행하여졌다. 소설가 김성일 장로 등의 창조사학회 탐사팀은 1997년 노아의 방주가 대홍수 이후에 착지한 아라랏산에서 바이칼 호수-하얼빈-심양까지 셈족이 이동한 경로를 추적하여 [한민족기원 대탐사-셈족의 루트를 따라서]라는 보고서를 출간한 바 있다. 탐사 결과 고대의 민종이동 루트가 인종과 언어, 토기와 생활도구 등 문화와 풍습 면에서 많은 연관성이 있다고 발표했다.

1970-80년대에 미국에 이민온 한국 교포들은 오래 전부터 유태인들이 취급하던 세탁소, 편의점, 선물가게 등을 많이 인수했다. 언어가 활달하지 않아도 부지런하기만 하면 이민자들이 어지간히 꾸려갈 수 있는 직종들이다.
유태인들이 부모 세대는 힘든 일을 하면서 자녀들은 영재교육을 시켜 상류 전문직인 의사, 변호사, 교수, 기자, 금융가 등의 직업으로 대부분 전환시켰다. 우리 동포들도 2세의 교육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다시피 하는 것은 닮았지만 아직은 거기에서 그친다(박재선 지음, 해누리 펴냄, 제2의 가나안 유태인의 미국, 278-289쪽).

한국인과 유태인은 모두 평균적으로 머리가 좋고 부지런할 뿐만 아니라 자녀교육에 광적인 열의를 갖는 것도 비슷하다.
그러나 유태인은 미국 내 총인구가 백만 명 규모이던 시절부터 정치.사회적으로 영향력을 갖고 있었지만, 우리는 교민수가 2백만명, 유학생이 10만명에 달하는 데도 유태인만큼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유태인들은 정치적 유력자들에게 아낌없이 헌금을 하고 조력을 다해 고위직에 많은 유태인들을 심어놓았다.

다른 점도 상당히 많다.
한국인은 유난히 부동산에 집착하는 반면 오랜 디아스포라를 겪었던 유태인은 지식의 축적, 귀금속이나 돈 거래에 능하다.
한국인이 남과의 경쟁에 이겨 좋은 학교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을 최고로 여기는 반면 유태인들은 각자가 처한 사회에서 최대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잠재력 개발에 교육의 목표를 두고 있다.
유태인은 논리적이고 이지적인 데 반해 한국인은 기분이나 감성이 앞서는 것이 다르며, 한국인들은 공동체, 지역사회에 대한 헌신이나 자선, 기부에 몹시 인색하다.
유태인들은 남이 하는 일에 덩달아 따라하는 일이 없이 각자 독창성 있는 일 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유태인들도 이제는 대부분 미국화되어 유태인의 전통을 이어 온 여성들조차도 본인은 전통교육을 받았음에도 자녀들이 이방인(특히 유색인)과 결혼하는 것도 묵인한다고 한다. 하물며 종교도 유대교를 고수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라고 하였다.

'잊게 해야 한다'는 프라이버시 특강

Dr. Viktor Mayer-Schoenberger 11월 15일 하버드대 행정대학원(Kennedy School)의 빅터 마이어-쇤버거(Viktor Mayer-Schoenberger) 교수가 UCLA에 와서 특강을 했다.
정보통신 및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지만, 나도 행사를 주관한 CENS(임베디드 네트워크 센터)의 Reading Group에 참여하고 있고, 강의주제에도 관심이 있어서 시간을 내어 참석하였다.

강의란 저렇게도 하는구나 싶을 정도로 전면의 스크린에는 핵심 개념만 차례로 비추면서 독일식 정확한 발음으로 책을 읽듯이 강의를 했다.
원고를 보고 낭독한다는 게 아니고 그대로 받아 적으면 논문이 될 것 같았다는 의미이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는 스태시 쉬나이더라는 젊은 여자가 공립학교 교사가 될 수 없었던 사례를 들며 강의를 시작했다.
그녀가 대학 시절의 어느 행사에서 해적 모자를 쓰고 술을 마시는 장면의 사진이 MyFaceBook 사이트에 올려져 있었는데 교육구청에서 그러한 모습은 교사로서 적합하지 않다며 임용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사람은 생물학적으로 잊어버리게(forgetting) 마련이지만 정보통신망(global networks)은 영구히 기억(remembering)하기 때문에 종종 이런 일이 빚어진다. 구글(Google)의 강력한 검색엔진은 몇 년 전의 사실도, 사진도 그대로 찾아서 보여주므로 사람들은 전혀 새로운 상황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컴퓨터의 엄청난 저장능력(storage)과 검색기능(retrieval), 그리고 어디서나 접속해서 열람(global access)할 수 있는 특성에서 연유하는데, 사람들이 이것에 얽매이게 되면 앞서 말한 부작용(privacy/sanity)이 생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인의 프라이버시권을 존중하여 기술적으로 규제하거나, 개인정보의 수집 및 이용 목적을 명백히 하여 목적외 이용을 금하는(purpose limitation) 방안이 실시되었다.
2차 대전 때 화란 정부가 1930년대에 복지행정 목적으로 주민들의 종교까지 조사해 놓은 것이 고스란히 나치 독일의 손에 들어가 화란의 유태인들은 숨을 곳도 없이 홀로코스트의 제물이 된 역사적 사실이 있다. 쇤버거 박사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정부는 애당초 국민들의 세세한 신상정보를 알 필요가 없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매우 간단한 방법을 제안했다.
컴퓨터망에 저장되는 모든 정보의 유효기간(expiry date)을 정하자는 것이었다. 예컨대 인터넷 검색정보나 디지털 사진의 유효기간의 디폴트값을 초단기로 정해놓고 필요한 경우에만 이를 연장하도록 하면 많은 사람들이 불필요한 유해한 정보로부터 사생활을 보호받을 수 있다는 게 그의 강연 요지였다.

여러 참석자들이 잇달아 질문을 하였는데, 독일과 영국, 미국에서 경제학과 법학을 공부한 그는 답변에 막힘이 없었다.
나는 기록매체(점토판, 파피루스, 양피지, 종이 등)에 따라 자연적으로 유효기간이 정해지던 것이 "영구보존이 가능한 신기술의 등장으로 새로운 고민이 생겼구나", "이것을 공공정책으로 진지하게 논의하는 사람도 있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을 주의깊게 경청하는구나" 다소 엉뚱한 생각을 하며 앉아 있었다.

법학교수와 '학문의 자유' 논란

2007년 가을 LA를 중심으로 미국 법학계를 소란하게 만든 사건이 일어났다. 2009년 개교 예정인 캘리포니아 주립대 어바인 분교(UC Irvine)의 로스쿨 학장으로 듀크대학교의 저명한 헌법학자인 어윈 케머린스키(Erwin Chemerinsky) 교수가 9월 초에 임명되었는데 1주일만에 취소가 된 것이다.

표면상의 이유는 학교 행정상의 착오라고 했지만, UC 어바인이 인사를 뒤집은 것은 신임학장이 너무 진보적인 견해를 취하여 주립대학으로서 정치적 입지가 곤란해질 것을 우려한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케머린스키 교수는 사형수의 연방법원 재심을 불허하기로 한 곤잘레스 법무장관의 방침에 대해서도 비판을 하는 등 보수주의자들의 공격을 받을 가능성(a lightning rod for conservatives)이 컸던 것이다.
이에 UC 어바인 교수들이 학문의 자유(academic freedom)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집단적으로 반기를 들고, 전국의 법학교수들도 보수-진보 성향에 관계없이 UC 어바인 측을 성토하기 시작했다. 그 중의 대표적인 학자가 UCLA의
제리 강 교수였다.
강 교수는 학장직은 테뉴어를 받은 교수가 가는 승진 보직인데 특정 정치적 입장을 취하면 학장이 될 수 없다는 것은 학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강 교수는 그의 통신법 시간에 설명한 미 연방대법원의 도서관협회 판결[United States v. American Library Association, Inc., 539 U.S. 194 (2003)]을 소개하였다.

이 사건은 도서관에 재정지원을 하면서(LSTA) 인터넷상의 음란물을 차단하는 프로그램을 설치하도록 요구한 아동인터넷보호법(CIPA) 조항의 위헌성을 다룬 연방대법원 판결이다.
전국도서관협회는 이 조항이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조건(unconditional condition)을 붙인 것이라 주장하였으나, 당시 렌퀴스트 대법원장이 설시한 다수의견은 공공도서관에 설치된 인터넷이 공공의 장소(public forum)도 아니며, 의회가 청소년들이 음란물에 접속할 수 없도록 이들 도서관에 돈을 주어가며 차단 프로그램을 설치하라는 것일 뿐, 이것을 설치하기 싫으면 정부 돈을 안 받아도 되고 필요하면 이 프로그램을 무력화할 수도 있으므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도록 유도한 것은 아니라고 판결했다.

MindManager를 사용하여 통신법 강의를 하는 Jerry Kang 교수 제리 강 교수는 Pico 판결을 예로 들어 도서관이 어떠한 고려 하에 도서를 구입하는 것과 장서의 일부를 퇴출하는 것은 헌법상의 판단이 다르다면서(intermediate scrutiny v. strict scrutiny) UC 어바인이 케머린스키 교수를 학장으로 선임한 것과 그 임명을 취소한 것은 타이밍 상으로 질적으로 다른 문제라고 공박했다.
즉 여러 후보자 중에서 케머린스키 교수를 선임한 것은 공공도서관이 책을 구입하는 것처럼 별 문제가 없지만, 그의 임명을 취소한 것은 도서관 장서를 퇴출하는 것처럼 헌법상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UC 어바인은 케머린스키 교수의 학장 임명을 취소한 지 1주일만에 그를 학장에 재임명하고 케머린스키 교수가 다시 이를 수락함으로써 사상 유례가 없는 학장 임명-취소-재임명-재수락의 인사절차가 일단락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의 모든 법학자들이 들고 일어선 덕분에 법학교수가 학술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보다 확고하게 보장을 받을 수 있게 된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모 대학 총장이 어느 후보의 선대위에 참여하였다가 엄청난 비난을 받고 선거 캠페인에서 발을 뺀 적이 있다. 교수가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소신을 분명히 밝히는 것도 좋지만 어디까지나 사심(私心) 없이 학술활동에 관한 것이어야 '학문의 자유' 이름으로 보장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법학교수들의 지뢰밭 - e메일과 블로그

UCLA 로스쿨에서 강의를 들으면서 "내가 강단에 서서 강의를 하는 장면"을 상상하곤 하였다. 그것은 한국에도 미국식 로스쿨이 도입이 되고 나도 영어로 강의를 하기로 학교에 신청을 하였기에 더욱 실감이 났다.
이렇게 되자 자연히 내가 "강의를 할 때에는 이러 저러한 것을 하겠다"는 생각이 들고 학생들을 새로운 각도에서 관찰하게 되었다. 수업시간에 늦게 들어오는 학생, 시간 중에 e메일 박스를 열어보거나 카드게임을 하는 학생, 질문에 제대로 답변을 못하는 학생, 심지어는 교과서도, 노트북 컴퓨터도 없이 멍하니 앉아 있는 학생들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미국 대학에서는 학생들의 외모와 피부색, 이름에서 인종적 구별이 가능하고 그들의 수업태도와 연결될 수 있다. 교수의 입장에서 철저히 자기절제를 하지 아니하면 자칫 차별적인 발언을 하기 쉽다.
실제로 시카고에 있는 존 마샬 로스쿨의 어느 교수는 "유대인 학생들이 흑인 학생들보다 공부를 잘하고 변호사 시험 합격률도 높은데 이는 종교적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냐"고 말했다가 학교로부터 징계를 받았다. 그 교수는 수업이 끝난 후에 별다른 의도 없이 말한 것을 가지고 징계를 한 것은 부당하다며 학교를 상대로 1백만불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 상태이다.
UCLA 로스쿨의 리처드 샌더 교수도 흑인 학생들의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저조한 것과 대학의 소수인종우대조치(Affirmative Action)가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는지 분석하겠다고 캘리포니아주 변호사시험위원회에 응시자들에 관한 통계자료를 요구하였다가 거절만 당하고 사방에서 쏟아지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위스콘신대 로스쿨의 캐플란 교수 역시 인종차별적인 언급이 문제가 되어 곤욕을 치렀다. 그는 형법시간 중에 중국, 북베트남, 라오스 일대에 사는 "몽족(苗族의 일파로 'Hmong'으로 표기)은 싸울 줄밖에 모르고, 라오스의 압제를 피해 미국, 캐나다 등지로 이주한 후에도 아시안 갱이나 범죄자가 되었다"는 설명을 한 적이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한 중국 학생이 이것을 블로그에 올려놓는 바람에 캐플란 교수는 졸지에 인종차별주의자가 되어 버렸다. 그는 강간죄의 피고인이 이질적인 문화에 속한 경우 그의 문화적 관행이나 태도가 다르다는 변명(defense)을 많이 한다는 사례로 설명을 한 것인데(비슷한 케이스로 오래 전에 어느 교포가 어린아이의 고추가 귀엽다고 만졌다가 아동 성추행법으로 몰렸었다. 그 때 한국에서는 할아버지.할머니가 어린아이의 성기를 일쑤로 만진다고 문화적 차이를 강조함으로써 가까스로 중형을 면할 수 있었다), 거두절미하고 해당 언급만 블로그와 e메일을 통해 매스콤에 확대 보도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사건은 위스콘신대 로스쿨 교수들이 캐를란 교수를 적극 옹호하고, 존 와일리 총장도 "인터넷 시대에 단편적인 발언(isolated remarks)이 국제적인 시비거리가 된 것은 유감이며, 문화적 간극을 좁히려는 노력이 좀더 필요하다"고 말함으로써 일단 봉합이 되었다. 와일리 총장은 캐플란 교수의 표현의 자유나 강의기법 선택에 관한 학문의 자유를 제한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위와 같은 일련의 사건은 법을 잘 아는 법학교수이기 때문에 더더욱 인종차별적·성차별적 발언은 공석·사석을 막론하고 금기시되고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교수가 사석에서 한 말일지라도 어느 학생에 의해선가 본인의 의도와 관계없이 인터넷 블로그나 e메일, 심지어는 UCC를 통하여 전세계에 전파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새로 문을 여는 로스쿨은 일반교양 교육을 하는 곳이 아니고 비싼 등록금을 받고 전문가(professionals)를 양성하는 학교인 만큼 교수의 개인적인 훈화나 자칫 빗나갈 수 있는 사담(私談)은 절대 금물이고 철두철미 해당 과목의 가르칠 것만 가르치고 끝내는 수업이 되어야 할 것 같다.

거침없이 빚을 지는 미국의 법대생들

지난 9월 하순 월 스트리트 저널이 미국 로스쿨에 경종을 울린 데 이어, 로스쿨 학생들을 독자층으로 하는 내셔널 쥬리스트 11월호에서도 커버스토리로 "감춰진 부채위기"(The hidden Debt Crisis)라는 특집을 다루었다.
이 잡지는 뉴욕 맨해튼 소재 뉴욕 로스쿨의 경우 학비가 3만8,600불인데 대도시의 비싼 생활비 덕분에 학생들이 졸업할 때에는 8만불 이상 빚을 지게 된다고 보도했다. 이 학교는 학생들이 졸업 후에 받는 연봉이 대략 5만2,500불에서 12만5,000불 수준이므로 이를 감안하여 학자금 대출을 받고 상환계획을 세우도록 지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금년에 대형 로펌에 취업한 초임변호사의 연봉이 16만불을 넘어섰다는 뉴스도 있었지만 고액 연봉의 혜택을 받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또 이렇게 받는다 해도 각종 세금으로 50%를 떼고 필요한 생활비를 공제하면 월 1000불씩 빚을 갚기에도 빠듯한 실정이다. 하물며 보수가 박한 정부기관이나 공익단체에 취업하는 경우에는 더욱 힘들어진다.
내셔널 쥬리스트 지는 주립대 로스쿨 졸업생의 경우 2001-2002학년에 평균 4만6,499불의 부채가 있었으나 2005-2006학년에는 평균 5만4,509불로 늘어났다고 전했다. 사립대의 경우는 같은 기간 평균 부채액이 7만8,763불에서 8만3,181불로 증가했다.

가장 우수한 집단이라고 하는 로스쿨 학생들이 왜 이처럼 빚더미 위에 앉게 되었는가?
첫째는 로스쿨의 학비가 많이 올랐기 때문이다. 주립대의 경우 1985년에 2,006불이던 등록금(그 주의 주민인 경우)이 지금은 1만3,145불로 올랐고(주민이 아니면 4,724불에서 2만2,987불로 증가), 사립대의 경우에는 같은 기간에 7,526불에서 2만8,900불로 껑충 뛰었다.

둘째, 로스쿨을 졸업하면 고액 연봉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 하에 학생도, 대출기관도 학자금 대출에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다.
통계에 의하면 2006년 졸업생 가운데 오직 14%만이 13만5천∼14만5천불의 소득을 올리고, 42%는 5만5천불 미만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무원이 되는 경우에는 연봉이 평균 4만8천불, 공익단체는 평균 4만불에 불과하다.
더욱이 변호사가 된 다음에 주당 70시간을 일해야 하는 데 지친 나머지 쉬운 일자리로 전직이라도 하면 수입이 줄어들고 학자금 상환은 더욱 어렵게 된다.

셋째, 로스쿨에 들어갈 때에는 집안의 재정지원도 거의 끊어지고 스스로 학비와 생활비를 조달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학생들의 씀씀이도 옛날보다 커졌다. 반면 학교의 장학금, 학비 면제 혜택은 그 수혜자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내셔널 쥬리스트 지는 알게 모르게 학자금 융자를 받는 법대생들이 크게 늘어났지만 상환계획은 갈수록 불투명해져 전국적으로 위기 수준에 도달해 있는 실정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뉴욕 로스쿨을 비롯한 일부 학교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부터 학비를 어떻게 조달하고 학자금을 융자받는 경우 그 상환계획을 어떻게 세워야 하는지 1학점 짜리 코스(financial literacy program)를 운영하고 있다.
학교 당국도 이러한 실상을 알고 학생들에게 구체적인 사정을 일깨워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대출을 받아 자동차나 집을 사는 경우에는 최악의 경우 자동차나 집을 포기하면 되지만 학자금은 평생 일을 해서 갚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문을 열게 될 로스쿨도 의학전문대학원 수준으로 학비가 책정될 것이라 한다. 만일 직장인들이 직장을 그만 두고 3년간 로스쿨을 다니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준비기간은 논외로 하고 4천만∼5천만원에 달하는 학비와 수백만원의 책값, 그 이상 가는 생활비를 조달해야 하는데 이 문제를 손쉽게 학자금 융자로 해결하려 든다면 졸업 후의 사정은 위에서 말한 미국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로스쿨에 뜻을 둔 사람들은 지금부터 변호사가 되어 누리게 될 환상을 버려야 한다는 뜻이다. 로스쿨 진학은 유능한 전문변호사가 되기 위한 훌륭한 투자이긴 하지만, 그 못지 않은 위험부담과 희생이 수반되는 것임을 각오해야 할 것 같다.

LA의 또 다른 명물 월트 디즈니 콘서트 홀

LA 다운타운의 Walt Disney Concert Hall LA에 살면서 꼭 가보아야 할 곳 중의 하나가 다운타운에 있는 월트디즈니 콘서트 홀이다. 그 일대가 LA 시빅 센터이고 대각선 방향으로 건너편에는 LA 카운티 법원청사가 있으므로 민·형사 소송사건이 아니더라도 주정차·교통법규 위반으로 재판을 받는 사람들도 이곳에 자주 오게 된다.

LA 교향악단과 합창단의 본거지이기도 한 이 콘서트 홀은 1987년 월트 디즈니의 미망인인 릴리안 디즈니 여사가 기부한 5천만 달러로 신축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기존 음악당인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온(Dorothy Chandler Pavilion) 옆에 2,265석의 오디토리엄이 15년만인 2003년 10월 준공되었을 때에는 인플레 등의 영향으로 총공사비가 몇 배로 치솟아 274백만달러에 달하였다고 한다. 디즈니 유족들과 월트 디즈니사에서 추가로 6천만달러 가까이 출연하여 오늘날 월트 디즈니 콘서트 홀은 LA 남쪽 교외 애너하임에 있는 디즈니랜드 못지 않은 LA의 명소가 되었다.

Walt Disney Concert Hall의 overview 미국의 유명한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Gehry)가 설계한 이 건물은 외양이 매우 아방가르한 모습을 하고 있다. 예산절감을 위해 당초 석조로 마감하려던 것을 투박한 스텐레스 스킨으로 처리하여 매우 현대적인 느낌을 준다.
처음 신축되었을 때에는 이 건물의 표면에서 반사되는 빛과 복사열로 주변 건물들의 시야를 가리고 냉방비가 급증하는 등 민원이 야기되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5년 봄 건축가의 승인을 받아 문제가 된 구역의 금속 표면을 사포질(sand scraping)하고 무광택 처리를 하여 빛의 반사를 막았다고 한다.

콘서트 홀의 건물 구조도 특이하지만 LA 필은 미국에서도 손꼽는 교향악단이기 때문에 우리는 가을 공연을 기다렸다가 한 달 전에 예약을 하고 추수감사절 휴일이 막바지에 이른 11월 24일 낮 공연을 보러 갔다.
'관점의 전환'이라고 할까 일반적으로 앉아보기 어려운 오케스트라 뒤편에 있는 오버뷰 석을 골랐다. 디즈니 콘서트 홀의 자랑거리인 무대 전면의 파이프오르간은 볼 수 없었지만, 뒤쪽 천정에 난 창으로 바깥 하늘을 볼 수 있었다.

여성지휘자의 LA 필이 연주한 교향곡 신세계

거액을 기부한 Lilly Disney를 기념하는 장미 꽃봉오리 모양의 분수 11월 24일 하오 디즈니 콘서트 홀 설립자의 방(Founder's Room)을 지나 3층으로 올라갔다. 밖은 옥상정원이어서 아직 점심을 해결하지 못한 사람들이 샌드위치를 먹기도 하고 관객들이 이리저리 거닐면서 입장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1시 45분 오케스트라 뒤의 오버뷰 석으로 입장하였다.

오늘의 공연 중에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이라는 익숙한 레퍼토리가 있다는 것만 보고 골랐으나, 막상 프로그램을 받아보니 지휘자가 여성(Joana Carneiro)이었다. 바로 오케스트라 뒤의 좌석이기에 지휘자의 표정은 물론 지휘봉과 손끝의 미묘한 움직임까지 포착할 수 있었다. 카르네이로 지휘자는 아주 우아하게 주빈 메타처럼 큰 팔놀림으로, 때로는 번쉬타인처럼 입으로 노래를 하듯이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일사불란하게 지휘했다.
첫 번째 곡은 사무엘 바버의 곡(Samuel Barber, First Essay for Orchestra, Op.12), 두 번째 곡은 브람스의 바이올린과 첼로 이중 협주곡(Johannes Brahms, Double Concerto in A minor, Op.102)이었다.
중간 휴식시간 후의 세 번째 곡인 드보르작의 교향곡 9번 신세계(Antonin Dvorak, Symphony No.9 in E minor, Op.95, "From the New World")가 이 날 공연의 하이라이트였다.

LA Phil의 부지휘자 Joana Carneiro 여성 지휘자는 악보를 올려놓는 테이블을 치우고 마치 펜싱하듯이 지휘봉을 힘차게 휘둘렀다.
제1 악장(Adagio; Allegro molto)은 우리가 가 보았던 그랜드캐년과 옐로스톤을 다시 보는 듯 미국의 산과 계곡, 평원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다.
제2 악장(Largo)에서는 지휘의 패턴도 달라졌다. 우리에게도 너무 익숙한 "꿈속의 고향(Goin' Home)"의 멜로디를 지휘할 때에는 한없는 부드러움과 섬세함으로 작곡자의 심정을 묘사하였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드보르작의 마음이 미국 체류 9개월째인 나에게도 그대로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제3 악장(Molto vivace)에서는 칭칭이(triangle)와 심발즈까지 동원하고 미국의 어느 도시의 크고 작은 건설현장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제4 악장(Allegro con fuoco)에서는 역동적으로 발전하는 미국의 산업과 큰 공장 내부에서 기계들이 돌아가는 것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피날레에서는 모든 관현타악기가 어우러져서 미국의 발전을 소리높이 외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오케스트라 뒤의 오버뷰 석에 앉아서 조명을 받는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물론 저 앞쪽의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청중들의 모습까지 볼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는 드보르작의 고향인 보헤미아의 애조를 띤 선율이었지만, 오늘의 여성 지휘자는 우리로 하여금 미국의 다이나믹한 풍광을 음악을 통해 접할 수 있게 해주었다.

쉽고 감동적인 조엘 오스틴 목사의 설교, 비판도 만만치 않아

어느 신자가 도대체 세상에 되는 일이 없다며 절망한 나머지 교회 목사를 찾아갔다. 목사가 종이를 주면서 왼편에는 감사할 거리를, 오른편에는 문젯거리를 쓰도록 했다. 신자는 왼편에는 아무것도 쓸 게 없다고 항변했다.
그러자 목사는 "부인이 돌아가셨다면서요? 집이 불탔다고요? 직장에서 해고되셨다니 안타깝습니다"라고 말했다. 어리둥절해진 신자는 이내 목사의 말뜻을 깨달았다. 그는 왼편에 건강한 아내, 아름다운 집, 번듯한 직장, 이렇게 한참 써 내려갔다.
그가 상담실을 나섰을 때 상황이 바뀐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그는 자신이 넘쳐 있었다.

출처: Joel Osteen, Become a Better You(잘되는 나)에서 간추림

Megapastors Joel and Victoria Osteen 휴스턴 레이크우드 교회의 조엘 오스틴 목사의 설교는 TV를 통해, 설교집을 통해 미국은 물론 전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다.
미국에 와서 TV를 통해 그의 설교를 들었을 때 우선 콜로세움(Coliseum) 같은 큰 예배당에 놀랐고 그 다음은 쉬운 말로 이어가는 메시지에 감동을 받았다. 레이크우드 교회는 1만6천석의 체육관(arena) 구조이고, 다른 곳에서 열리는 오스틴 목사의 대중집회 역시 워낙 사람이 많이 모이기 때문에 큰 경기장을 빌려야 한다.

최근에는 그가 새로 펴낸 책 [Become a Better You]으로 미국 논픽션 출판사상 기록적인 인세를 받게 되었다는 뉴스를 듣고 또 놀랐다. 그 동안 오스틴 목사의 책을 출판해 온 워너 페이쓰를 제치고 사이먼&슈스터사의 자회사가 출판을 하게 되었는데 선인세로 2백만불을 지급하고 향후 5-10년간에 걸쳐 출판사의 판매수익의 50%를 지급하는 조건이라는 것이다.
출판관계자는 초판으로 3백만부가 발행되었으니 오스틴 목사는 새 책에서 적어도 1천만불은 벌게 될 것이라고 추산했다.

조엘 오스틴 목사에 대한 대중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다. 그가 1999년 고혈압으로 쓰러진 아버지의 교회 강단을 물려받은 뒤로 1만명이던 신자가 3만5천명으로 늘어 미국 최대의 교회를 이끌고 있다. 휴스턴의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과 열의도 대단하다. 새 책을 가지고 미국과 유럽 투어를 하고 있는데 세계 각지로부터 방문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비판도 만만치 않다. 그의 설교 메시지는 쉬운 나머지 솜사탕 같은 가벼운 신학(Theology Lite)으로 흐르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메시지는 찾을 수 없다고 한다. 예수를 믿으면 축복을 받는다는 기복중심의 복음(Prosperity Gospel)을 너무 강조한다는 것이다.
그가 정식으로 신학수업을 받지 않은 것이나, 공동목회를 하고 있는 빅토리아 오스틴 사모가 종종 구설수에 오르는 것도 흠이 되고 있다. 2005년 12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콜로라도 스키장으로 가족여행을 떠날 때 빅토리아 목사가 비행기 1등석에서 소란을 피워 연방항공청(FAA)으로부터 벌금 3천불을 부과받고 해당 승무원한테는 손해배상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조엘 오스틴 목사는 그리스도의 사도 중에도 신학교육을 받은 사람은 없었다고 말하고, 자기는 과도한 스트레스로 고통받는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메시지를 전할 뿐이라고 강조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큰 문제가 되었겠지만, 레이크우드 교회 당회는 갑자기 소천한 존 오스틴 목사의 네째아들 조엘이 신학공부를 하지도 않았고 교회 방송사업에만 종사하였을 뿐인데도 그에게 큰 교회의 강단을 맡겼고, 그는 열성적으로 교회와 신자들을 섬겼다. 현재 이 교회는 어느 교파에도 속해 있지 않다.

인종을 불문하고 조엘 오스틴 목사의 설교를 열광하며 듣는 사람들을 보면 시대가 요청하는 메시지를 발굴해서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그의 능력이 평가절하되어서는 안될 것 같다.
로스쿨 영어강의에 대비해야 하는 나 역시 조엘 오스틴 목사의 간명한 설교처럼 강의를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의 방송설교를 열심히 시청하고 있다.

UCLA 로스쿨 제리 강 교수와의 대화 (경칭은 생략함)

기말시험이 끝난 학생들로부터 헌책을 구입하는 부스가 등장하였다 12월에 접어들면서 UCLA 캠퍼스는 기말시험 모드에 돌입하였다. 로스쿨 학장은 전과 다름없이 커피와 간식을 차려놓고 시험공부를 하는 학생들을 격려하였다. 학생들은 강의실이고, 휴게실이고, 앉을 곳만 있으면 책을 펼쳐 놓고 공부를 하고 있었다. 시험이 끝난 일부 학생들은 성급하게도 "헌책 삽니다"라는 부스에 책을 팔고(구내서점이나 Amazon.com에서는 used book을 할인가격으로 판매함) 크리스마스 휴가비를 장만했다.

가을 학기에 통신법정책을 수강한 터라 패컬티 어드바이저인 제리 강(Jerry Kang) 교수와 12월 10일 교수회관(Faculty Center)에서 점심식사를 같이 하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가졌다.
강 교수는 지난 6월
서울을 방문하였을 때 여러 대학에서 특강을 한 바 있기에 한국의 로스쿨 진척상황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았다. 강 교수의 전공분야는 국내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어 앞으로는 자주 서울법대와 모 법무법인의 초청으로 서울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했다.

* 한국의 로스쿨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 7월 초에 법이 통과되어 11월 말 전국 97개 법과대학 중에서 41개 학교가 법학전문대학원 신청을 하였다. 정부 산하의 법학교육위원회로부터 내년 초에 예비인가를 받은 학교들을 중심으로 준비를 하여 내년 여름 본인가를 받게 되면 학생을 선발하고 2009년 3월에는 정식으로 개원하게 된다.

* 로스쿨 총정원을 둘러싸고 논란이 많았는데, 변호사 시험은 얼마나 합격시킬 것으로 보는가?
- 로스쿨 총정원이 당초 정부계획에 의하면 1500명이었으나, 학교, 시민단체, 국회의 요구로 2000명으로 늘어났다. 당초 변호사단체에서는 1500명도 많다고 반대하였으나 법학교수회와 시민단체에서는 적어도 3000명은 되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로스쿨 적성검사(LEET) 등 많은 것이 시행령 등으로 확정되어야 하며, 최종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몇 %나 될지는 그 때 가봐야 알 수 있다. 적어도 일본보다는 사정이 나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 로스쿨이 되면 법학교수들의 이동이 활발해질 것으로 보는가?
- 그렇다. 지금까지는 교수의 이동이 드물었으나 이제 "민족의 대이동"(great movement of German tribes)이 시작되었다. 서울법대에서도 지난 8월 아주 이례적으로 타 대학 교수 8명 포함, 유수 로펌의 변호사, 검사, 변호사 15명을 채용했다.
로스쿨 본인가를 받을 때까지는 강의적합성(teaching requirements)을 갖춘 교수들의 스카웃 바람과 빈번한 이동이 예상된다.

MindManager를 사용하여 통신법을 강의하는 제리 강 교수 * 로스쿨 도입에 대하여 학생들은 좋아하는가 싫어하는가?
- 우리 아들도 사법시험 공부를 하고 있는데 어떻게 진로를 정해야 할지 나로서도 조언해주기 어려웠다. 대한민국 성인남자로서 반드시 마쳐야 할 군 복무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군 복무기간은 짧아지고 있지만, 공부를 하는 남학생들로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허들이다. 이와 관련하여 인권위원회는 그동안 논란이 많았던 양심적인 병역거부자에 대하여 대체복무를 허용하도록 정부에 권고했다.

* 로스쿨은 어떻게 운영될 예정인가?
- 로스쿨 정원의 30% 이상 비법학 전공자들에게 개방하고, 학비가 지금보다 크게 오르는 만큼 상당수의 학생들이 장학금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학교 당 정원은 150명이 상한(cap)인데 교수 1인당 학생 수는 12명이어야 하므로 학교별로 패컬티 숫자에 따라 정원을 다르게 신청하였다.

* 전통적인 한국 법학교육은 미국 로스쿨의 강의기법과 다른데 로스쿨에서는 어떻게 하리라고 보는가?
- 당분간은 절대다수의 교수가 익숙한 전통적인 강의방법으로 행해질 것이다. 그러나 미국식 로스쿨의 장점을 살려 소크라테스 문답식 교육이 많이 행해질 것으로 본다.
미국의 로스쿨에 대하여는 학생들이 더 많이 안다. "펠리칸 브리프"(Pelican Brief), "금발이 너무 해"(Legally Blonde) 같은 영화뿐만 아니라 미국의 LL.M., JD 과정을 마친 한국 학생들이 미국 로스쿨 지망생들을 위해 자세한 내용의 책을 썼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압력에 따라 미국 로스쿨식 강의가 불가피할 터인데 나는 실력파 강 교수의 강의를 들을 수 있어서 행운이었다. 통신법 강의를 들으면서 나도 마인드맵(MindManager)를 써서 강의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마인드맵은 사용이 쉽지는 않지만 파워포인트와는 달리 쌍방향 PT가 가능하다. 그런데 외국어 강좌를 개설한다면 꼭 영어로만 해야 하는가? 아니면 다른 외국어로 할 가능성은 없는가?
- 경희대에도 독일어를 모국어처럼 잘 하시는 교수님이 계셔서 독일어 강좌를 개설할 예정이지만 학생들이 얼마나 수강할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중국에서 법률수요가 증가하고 있고 큰 시장이 형성되고 있어 조만간 중국어 강좌는 개설될 것으로 본다. 한국의 로스쿨에서도 외국 학생들을 받아들여야 하므로 외국어 강좌는 점차 다양해질 것으로 예상한다.
중국의 경우 중국 법학계가 한국 법학을 전통적인 사회주의 법체계를 선진 법체계로 이행하는 데 필요한 징검다리로 이용할 가능성이 많아 중국 법과대학과의 협력관계도 유망하리라 본다.

* [My Question] 가을 학기에 UCLA의 LL.M. 과정에 새로 들어온 한국 학생들을 별로 보지 못했다. 예년 같으면 정부 공무원이나 변호사, 은행원들이 꽤 왔을 터인데, 매년 한국 학생은 몇 명이나 뽑는가?
- 정해진 쿼터는 없으며 우수한 학생은 얼마든지 받아들이고 있다. 다만, TOEFL 성적만 가지고는 학교 공부를 따라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므로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한다. 그러니 영어를 잘하고 법학의 소양이 있는 믿을 만한 학생이 있으면 적극 추천해주기 바란다

끝으로 나는 BBK 사건의 또 다른 주역 엘리카 김이 UCLA 로스쿨 출신의 변호사이고 LA 상공회의소 회장을 역임하였으므로 잘 아는지 질문하였다.
그러나 제리 강 교수는 한국에서 벌어진 BBK 사건의 경위를 전혀 모르고 있었고, 엘리카 김 변호사와 한 번 방송 좌담을 같이 한 적이 있으나 잘 알지 못한다고 대답했다.

미국은 소비자들의 천국

Desert Hills Outlets at Cabazon near Palmspring 추수감사절이 지나면 본격적인 연말 쇼핑시즌이다.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11월의 넷째 목요일 22일인데 그 다음날은 'Black Friday'라 해서 1년 중 가장 파격적인 할인매출을 하는 날이다. 뉴욕의 백화점 본사 앞에서 추수감사절 퍼레이드를 펼쳤던 메이시 백화점은 블랙 프라이데이 아침 6시에 개장한다고 대대적으로 광고를 했다.

주식투자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Black Monday', 'Black Friday'라 하면 주가의 낙폭이 커서 큰 손해를 본 날을 뜻하지만, 소매업자들에게는 일년 중 판매부진을 씻고 재고를 처분하여 재무상태를 흑자로 돌릴 수 있는 날을 의미한다고 한다. 금년에 가장 주목을 받았던 매출상품은 대형 HD TV(LCD, PDP)와 모니터들이었다. 샤프, 파나소닉 등 외산 가전제품이 '반의 반' 값으로 세일을 한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금요일 아침부터 매장 앞에 줄을 섰다.

언론에서는 서브 프라임 모기지 위기로 소비심리가 얼어붙어 금년 연말 매출을 크게 기대할 수 없다고 했다. 그게 현실로 나타났다.
신문에서는 연일 대형 금융기관들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 손실이 예상보다 크고 수천 명씩 구조조정을 단행한다는 기사가 실렸다.
사실 LA 지역만 해도 작년까지 좋았던 주택경기가 금년 들어 크게 침체되었고, 코리아 타운에서도 메이저 백화점에 가기 전에 우선 동포들 가게부터 들러달라고 호소하는 지경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돈 있는 사람이 소비생활을 하기에 좋은 나라이다.
돈이 없어도 세일 기간을 이용하거나 염가(99센트) 매장에서 필요한 물건을 싸게 구입할 수 있다. 우선 자기가 원하는 상품을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고, 맘에 안 들면 15일 이내에 반품시킬 수 있다. 영수증만 있으면 아무 말 않고 교환해주거나 리펀드(또는 credit) 해준다. 또 원하는 물건이 매장에 없으면 '레인 체크'를 요구하여 세일 기간이 지난 후에도 할인 가격으로 살 수 있다.
좀더 발품을 팔면 아웃렛몰(자동차로 1-2시간 걸리는 도시 외곽에 설치된 대형 상설 할인매장)에 가서 좀 더 싸게 살 수도 있다.

필자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세일을 하는 팜스프링 부근 카바존에 있는 데저트 힐 아웃렛(Desert Hills Outlets)에 다녀왔다. 우리 사는 아파트에서 꼭 100마일(161km) 거리에 있으니 왕복 3-4시간은 잡아야 갈 수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 여주에 있는 첼시 아웃렛과 같은 Chelsea Property와 같은 그룹에 속해 있어 건물 외양이나 입점업체의 배치도 비슷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명품으로 알려진 휴고 보스(Hugo Boss)의 신사복 정장이 400불 대에서 팔리고 있었으니 정말 '반의 반' 값(sales tax 7.75%)이라 할 수 있다. 아르마니(Giorgio Armani)나 제냐(Zegna) 같은 유명 브랜드도 세일 가격이 적용되어 1천불 내외의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필자가 찾아간 날은 월요일이기도 했지만 '연말 대세일'이라고 하기에는 주차장이나 매장이나 크게 붐빌 정도는 아니었다.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지 않는 까닭인가. 혹은 월말의 After Chrismas clearance sale을 기다리는 것인가.
아니면 마케팅 컨설팅 전문기관인 브레인리저브의 팝콘 보고서[페이스 팝콘 외, 클릭! 이브 속으로(EVEolution), 21세기북스, 189쪽]에서 지적한 대로 시간에 쫓기고 나이가 많아지는 베이비부머 소비자들이 이제는 1-2시간씩 차를 몰고 나와 쇼핑을 하지 않는다는 예측을 현장에서 미리 확인한 것인지도 몰랐다.

부동산대출 부실로 한인교포 은행들 고전

전격 사임을 발표하는 한미은행 손성원 행장 미국 금융계를 강타한 서브프라임 모기지(신용도가 떨어지는 주택담보대출) 대출 부실은 한인교포 은행들(Korean community banks)에게도 심각한 타격을 주기 시작했다.
지난 11월 초 메릴린치 최초의 흑인 CEO 스탠리 오닐이 부실책임을 지고 사퇴한 것처럼 미국에서 가장 큰 교포은행인 한미은행의 손성원 행장이 12월 27일 전격 사퇴를 발표하였다. 웰스 파고 은행의 조사담당 수석부행장을 역임하는 등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것으로 알려진 손성원 행장이었기에 임기를 3년 이상 남겨놓고 사임하는 것은 한미은행의 부실이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현재 LA지역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 한인교포 은행은 모두 10개인데, 그 중 'Big 4'는 한미은행, 나라은행, 윌셔은행, 중앙은행이다. 네 은행은 모두 NASDAQ에 상장되어 있으며, 한미은행의 총자산이 40억달러로 제일 많고, 세 은행은 20억불대에 올라 있다.
이들 커뮤니티 뱅크들은 캘리포니아주의 부동산경기가 좋을 때 대출을 많이 늘려 자산규모는 크게 증가하였으나 현지 경기가 나빠지면서 부실이 심화되어, 최근 들어 주가가 급락하였다. 특히 한미은행의 경우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에 보고된, 2007년 상반기에 1월 이상 원리금이 연체된 대출자산만 해도 38백만달러에 달했다.

지금도 LA 코리아 타운의 이곳저곳에서는 한인 개발업자들이 신축 또는 개보수하는 상업용 건물의 공사현장이 많이 눈에 띈다.
한인은행들도 미 서부지역의 부동산 경기가 활황을 보이고 한국에서 투자자금이 몰려들 것을 예상하고 대형 건설 프로젝트에 대출을 많이 해주었다.
신문보도에 의하면 수년간 지속된 저금리 시대에 시장 선점을 위해 은행들이 공격적으로 대출경쟁을 벌인 것이 문제가 되었다고 한다. 외형확대에 치중하다 보니 잠재적 부실대출이 늘었고 부동산경기의 침체, 금리하락에 따른 단기 수지 악화로 수익전망이 나빠져 내후년에나 한인은행들의 실적이 호전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들 교포은행이 대출심사를 강화할 것이 뻔한데 이렇게 되면 코리아 타운의 각종 비즈니스가 자금부족으로 고전하게 되고 가뜩이나 어려운 타운 경기가 더욱 위축되리라는 점이다.
반대로 경영개선을 위해 은행들이 서비스 경쟁에 나서게 되면 반가운 점도 있다. VIP 고객을 겨냥한 상품이나 은행에 가지 않고도 예금을 할 수 있는 remote deposit 프로그램, drive-in ATM 서비스 등이 확대되고 토요일이나 저녁시간에도 영업시간을 연장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위기를 기회 삼아 뉴욕, 뉴저지 등 교포들이 밀집해 있는 동부지역에 새로운 거점을 확보하거나, 은행간 M&A가 활기를 띨 것으로도 예상된다.
실제로 LA의 커먼웰스 비즈니스 은행은 하나은행의 지분참여를 받아들였다. 하나금융지주는 12월 21일 미국 LA 소재 교포은행인 커먼웰스 비즈니스은행에 대해 한국 금융감독위원회의 자회사 편입 승인을 받았음을 서울증권선물거래소에 공시했다. 하나금융지주는 미국 감독당국의 승인을 받으면 이 은행의 지분 37.5%를 보유한 최대주주가 된다.

한미은행 손성원 행장의 경우 워낙 유명한 경제학자이기에 미국의 대학 강단에 서거나, 한국의 금융업계에서 영입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언론을 통해 옳은 소리만 하던 그였기에 은행부실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모습은 매우 궁색해 보였다.

미국의 대선주자 롬니 전 주지사는 십일조를 내는 진짜 '경제대통령' 후보

2008년 들어 처음으로 1월 3일에 실시된 아이오와주 당원대회(caucus)에서 민주당 오바마 상원의원, 공화당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가 각각 1위를 차지했다.
미국 50개 주 가운데 아이오와 주에서 제일 먼저 경선이 시행되는 데다 아이오와 주민들의 정치적 식견이 높아 여기서 승리하는 후보는 각 당의 선두주자로서 각광을 받고 선거자금을 많이 모을 수 있기에 그 만큼 백악관에 입성할 공산이 커진다.

대선 레이스에서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후광을 업고 시종 우세를 보였으나, 보수성향이 강한 농촌지역 아이오와 주에서 오프라 윈프리를 앞세운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의 바람을 잠재우지 못했다. 민주당이나 공화당 내부는 물론 국민들 사이에서 변화(change)를 갈망하는 소리가 드높기 때문이다.

Mitt Romney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 그런데 언론의 관심은 공화당의 후보인 미트 롬니(Mitt Romney)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가 모르몬교도라는 것과 남침례교 목사인 마이크 허커비(Mike Huckabee) 전 주지사와의 사이에 언쟁이 있었다는 데 쏠렸다.
대선 토론에서 롬니 후보는 자신을 이단이라고 말한 허커비 후보를 비판했고 허커비는 즉각 사과했다. 허커비는 주류 기독교목사로서 말일성도 예수교회(The Church of Jesus Christ of Latter-day Saints: LDS)에서 예수나 사탄(루시퍼)이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하는 것을 들어, "사탄이 예수 그리스도와 형제라고 믿는 것은 이단(cult)"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모르몬(LDS) 교도들은 성경 외에 교주인 조셉 스미스(Joseph Smith Jr.)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번역한 것으로 알려진 모르몬경(Book of Mormon)을 경전으로 삼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지만 삼위일체설(Doctrine of Trinity)을 따르지 않기에 예수 그리스도도 하나님의 아들이고, 사탄은 타락한 아들이며, 교인들도 급은 낮아도 역시 하나님의 자녀라고 믿는 것이다.

주류 기독교의 관점에서 모르몬교는 같은 성경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이색적인 게 한둘이 아니다.
많은 모르몬 교도들이 오해를 받았던 일부다처제(polygamy) 풍습은 일찍이 1890년에 폐지되었고, 지금 둘 이상의 아내를 두는 것은 파문 사유가 된다. 그러나 교회에 어떠한 형태의 십자가도 세우지 않고 예배는 드리지만 따로 목회자가 없으며, 권투선수 팬츠같은 성전속옷(temple garments)을 입고 죽은 사람에게도 세례를 베푼다. 영계를 떠도는 죽은 혼백에게도 모르몬교를 받아들일 기회를 주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모르몬 교회가 살아있는 선지자로 추앙받는 교회 회장(President)과 두 사람의 고문(counselors) 그리고 열두 사도(apostles) 등 엄격한 계층제를 통해 운영되는 것이나 남녀차별, 흑백차별이 공공연히 행해지는 것도 이상하게 비쳐진다.

십자가가 없는 솔트레이크시티의 모르몬 성전 그러나 옐로스톤, 아치스 국립공원 등 서부여행을 하면서 모르몬 교도들이 많이 거주하는 유타주를 다닐 때면 절로 안심이 되고, 우리 기독교인들도 그들을 본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타주에는 모르몬 교도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어느 곳이나 깨끗하고 질서가 잡혀 있으며 주민들도 한결같이 친절하였다. 날이 어두워지면 술도 팔지 않았다. 왜냐하면 모르몬 교도들은 매 2년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지, 수입의 십일조를 교회에 바치고 있는지, 정직하고 순결(chaste)하며 술.담배.커피를 금하고 있는지 심사를 받고 성전(temple)에 들어갈 자격(temple recommend)을 얻기 때문이다.
남자 교인들은 19세가 되면 장로(elder)로서 2년간 해외선교를 나가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흰 와이셔츠에 검정 바지의 단정한 차림을 한 미국 젊은이들은 모두 모르몬 선교사들이다. 그리고 나서 대학에 진학을 하는데, 솔트레이크시티에 있는 브리검영 대학은 미국에서 학비가 제일 싼 명문학교로 소문이 나 있다. 모르몬 교회에서 재정지원을 하기 때문이다.

롬니 후보는 단지 모르몬 교도라는 이유로 폄하되어서는 안될 것 같다.
그는 프랑스에서 2년 반 선교사역을 마치고 브리검영 대학을 졸업한 후 하버드대 로스쿨과 경영대학원을 다녔다.
우등으로 JD/MBA 복수학위를 취득한 다음 보스턴에 있는 컨설팅회사 베인&컴퍼니에 들어가 금융사업부문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였다. 43세에는 CEO를 맡아 도산위기의 회사를 재건하였는가 하면, 1998년부터는 2002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으로서 9.11 테러 사건으로 엄청난 보안경비(security cost)가 추가 지출되었음에도 성공적으로 흑자 올림픽을 치뤄냈다.
그리고 여세를 몰아 2002년 그가 놀라운 사업수완을 보였던 보스턴에서 주지사로 당선되어 재임기간 중 '교육개혁'을 이룩하였고 세금을 더 거두지 않고도 매사추세츠 주의 재정기반을 탄탄하게 다져놓았다. 모르몬교의 교구장(stake president)을 역임하였고 십일조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는 롬니 후보 자신도 2억불이 넘는 자산가로 알려져 있다.
경영 컨설턴트로서 수익을 많이 올린 기업 CEO를 지냈고 적자 투성이의 2002 동계올림픽과 주 재정을 흑자로 돌려놓은(turnaround) 롬니야 말로 '경제대통령'의 충분한 자격이 있어 보인다.

헐리웃을 뒤덮은 작가조합의 스트라이크

LA CBS 방송국 입구에서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는 작가길드 조합원들 지금 미국에서는 미국 작가 길드(Writers Guild of America)의 스트라이크가 10주째 계속되고 있다.
11월 5일 Thanksgiving 훨씬 전에 시작되었으니, 올 들어 작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방송, 연예 프로가 중단되는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미국의 방송연예사업을 보면 일종의 먹이사슬이 구축되어 있는데, 최상위에는 방송사와 기업형 제작자(따라서 작가조합의 협상 상대는 Alliance of Motion Picture and Television Producers: AMPTP), 그 다음에 시청자.관객과 접하는 배우, 탤런트(성우 포함), 가수들이 있고 그 다음에 작가들(writers)이 있다. 그리고 PD 등의 스탭과 엔지니어, 그리고 맨 아래에는 단순노무 제공자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와 같이 작가들이 비교적 존중받고 있는 풍토에서 그들의 불만을 품는 이유는 자기네들이 애써 만든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의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 방송사, 제작자가 광고수입을 포함한 엄청난 수익을 올림에도 자기네들한테는 옛날부터 내려온 배분공식에 의해 쥐꼬리만큼만 나눠준다는 것이다.

배우 출신인 슈와즈네거 캘리포니아 주지사도 중재에 나섰지만 이 문제가 캘리포니아주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협상은 이내 결렬되고 말았다.
여기에는 정보기술의 비약적인 발달로 DVD, 인터넷과 같은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하여 새로운 수익원이 창출되고 있으므로 자기네들도 한 몫 챙겨야겠다는 작가들의 전략적인 판단이 크게 작용하였다.

그런데 뉴 미디어의 등장에 따른 새로운 수입원이 얼마나 되고 이를 누가 차지할 것인지 불확실하기 때문에 아무도 자신있게 협상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게 그의 타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
미국 서부 여행 때 만난 한국인 애니메이션 감독(Jeff Beck)은 이제 대본도 바닥나 텍사스를 무대로 12년 이상 롱런해 온 "힐 가문의 왕(King of the Hill)"이라는 애니메이션 제작이 중단될 위기에 처해 있다면서, 모두 손해를 보고 있으니 작가조합도 더 이상 고집을 부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왼편 사진의 전면Westwood Fox Theater 앞에서 열린 영화 [27 Dresses]의 Premiere 포토 라인

그 여파로, 우리도 먼 발치에서나마 구경하려고 했던, 1월 12일 LA 비벌리 힐튼호텔에서 열린 Golden Globe Award 시상식에는 작가들의 파업에 동조하는 배우들이 전원 불참하였고, 2월 하순의 Academy Award 시상식도 개최 여부가 불투명하다고 한다.
LA에서 사는 즐거움이라면 유명 연예인들을 지근거리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므로 1월 7일에는 UCLA 앞 웨스트우드의 Fox Theater에서 열린 영화 "27 Dresses"의 프레미어 식장을 찾아갔다.
카메라맨이나 기자가 아닌 일반인들은 길 건너편에서 배우들의 뒷모습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일부 열성팬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배우의 브로마이드를 흔들며 거의 비명에 가깝게 이름을 외쳐 포토라인으로 향하던 배우를 자기 앞으로 오게 만들기도 했다.

미국에서 꼭 가봐야 할 곳

미국 체류 1년을 마감하기에 앞서 어느 곳을 가봐야 할지("Must-See" Places)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 보았다. 현재 LA에서 살고 있으니 서부지역은 되도록 많이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 옐로스톤 국립공원, 요세미티 국립공원, 그랜드캐년(자이언캐년, 브라이스캐년), 모뉴먼트 밸리, 아치스 국립공원, 록키산맥(덴버)
- 샌프란시스코, 샌디에고(티화나), 시애틀 Monument Valley landscape

동부지역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많다.
- 뉴욕(맨해튼), 워싱턴 DC
- 나이아가라 폭포

서부 지역은 2006년(Yosemite-San Francisco-Pebble Beach)과 2007년(Yellowstone Park, Sedona, Monument Valley-Arches National Park)에 여러 곳을 다녔으니 마지막으로 LA 삼호관광의 페키지 투어로 동부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미국을 떠나기 전에 뉴욕과 워싱턴DC 그리고 서부의 그랜드캐년에 필적할 만한 대자연의 위용, 나이아가라 폭포를 구경하고 싶었다.

미국은 땅덩이가 큰 나라여서 LA에서 동쪽 끝 뉴욕으로 가는 데만 비행기로 5시간이나 걸린다. 시차가 3시간이므로 아침 9시 20분에 출발한 비행기가 뉴저지의 뉴왁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현지시간으로 오후 5시 40분, 즉 하루의 일과를 끝낼 시간이었다.
그래서 첫날은 바로 호텔에 투숙하고 이튿날 아침 일찍부터 워싱턴 DC 관광 길에 나섰다. 워싱턴 DC에서 볼 곳은 거의 정해져 있다. 국회의사당-백악관-워싱턴 모뉴먼트(obelisk)-제퍼슨 기념관-링컨 기념관-한국전 참전비-스미소니언 박물관-내셔널 갤러리 등

Rainbow over Niagara Falls 동부지역에서도 나이아가라 폭포는 마침 날씨가 개어 캐나다 쪽으로 가서 헬리콥터도 타고 스카이론 타워에도 올라가는 등 다채롭게 구경했다.
뉴욕 맨해튼도 허드슨강 건너편 뉴저지의 팰리사이즈('절벽'이란 뜻)에 있는 해밀턴 공원에서 밤의 맨해튼 스카이라인을 구경하고 직접 타임스퀘어와 록펠러센터, 피프쓰 애브뉴(5th Avenue)를 걸어다녔다. 그 이튿날 아침에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도 올라가 보고 자유의 여신상 앞으로 유람선을 타고 가서 구경했다.
뉴욕에서 3년간 살기도 했지만 오랜만에 둘러보는 뉴욕의 거리는 여전히 매력적이었다.

아메리칸 항공사의 기내잡지 [Miles Are Forever]에서 매우 흥미로운 기사를 보았다.
"Less is More"라는 페이지를 통해 영시에도 일본의 하이쿠(俳句)와 비슷한 정형시가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즉 이 시의 형식은 정확히 3행 17음절(3 lines 17 syllables)을 지켜야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 ) 안은 음절 수를 가리킨다. Statue of Liberty, New York

     Time equals my life (5)
     Productivity is key (7)
     Use seconds wisely. (5) - Stephen Johnson

나도 마음 속으로부터 소감이 없을 수 없었다.

     America is big (6)
     Time flies; Many things remain (7)
     To be found next. (4)

Time Square, Manhattan      Monument Valley provides (7)
     Gorgeous view (3)
     My breadth was taken away. (7)

     Niagara Falls show (6)
     Awesome spectacles (5)
     My eyes become rainbows. (6)

     Big Apple City (5)
     Attracts all the people (6)
     Like powerful magnet. (6)

미국의 대통령 경선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유권자는 물론 전세계의 이목은 민주당 후보 힐러리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에게 쏠려 있는 것 같다.
공화당 진영에서도 여러 후보가 나왔지만 2월 5일의 '수퍼 화요일'이 끝나자
미트 롬니 전 주지사가 경선을 포기하였고, 일찌감치 매케인 상원의원으로 결정되는 모양새다.

민주당의 경우 오프라 윈프리가 처음부터 첫 여성대통령 후보인 힐러리보다 같은 흑인인 오바마를 지지한 것은 그렇다 쳐도, 미국 정계의 거물인 케네디 상원의원과 그 일가족이 오바마 지지를 선언한 것은 다소 뜻밖이었다.
마이너리티에 속하는 내 주변 사람들 중에도 오바마 지지자가 많았다. UCLA 로스쿨의 린 로푸키 교수 역시 오바마를 지지한다고 말했고, 제리 강 교수는 그가 오바마를 지지하는 이유를 신문에 기고(한국일보 기사)하기도 했다.

Barack Obama and Hillary Clinton 강 교수는 1990년 하버드 교정에서 오바마를 처음으로 보았다면서 그는 흑인 최초로 하버드 로저널의 회장을 맡아 경이로웠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 직책을 맡으려면 머리도 좋고 성적도 물론 좋아야 하지만, 보수와 진보, 중도파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정치적 식견과 뛰어난 리더십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후 오바마는 명문 시카고대 로스쿨의 헌법학 교수를 역임하였기에 권력분립, 적법절차, 법의 공평한 적용과 같은 헌법적 가치에 깊은 이해와 통찰력을 갖고 있을 것이다.

제리 강 교수는 오바마가 하버드 출신의 대학교수라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그야 말로 미국의 인종문제에 대하여 근본적인 변혁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를 지지한다고 공언했다.
흑인 정치인이 대통령이 될 수 있다면 언젠가 한국 또는 아시아의 누군가가 그의 발자취를 따라갈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우리가 귀국한 다음에 들은 뉴스에 의하면 수퍼 화요일에서 오바마는 힐러리보다 많은 13개 주에서 승리를 하였으나, 힐러리가 대의원 수가 제일 많은 뉴욕과 캘리포니아를 장악하였으므로 경선 결과는 여전히 예측불허라고 보도했다.

에필로그

마침내 신학기를 앞두고 LA에서의 연구년(Sabbatical year)을 마감할 때가 되었다.
1월 중 LA에서는 비가 자주 내리고 찬 바람 부는 날이 많았는데 로 라이브러리 앞의 자목련꽃은 활짝 피어 있었다. 벌써 봄이 온 것이다.
UCLA 로스쿨 도서관 캐럴에서 철수하면서 가지고 간 한국의 법학 교과서와 나의
저서, 학술지 몇 권을 도서관에 기증하였다. 한국계 학생들도 적지 않은 만큼 한국 법학에 관한 장서가 좀더 보강되어 한국 법학이 주목을 받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랬다.

그런데 아파트에 들여놓았던 TV와 침대, 가구, 부엌살림 등 세간을 처분하는 일이 제법 만만치 않았다. 한국 교포들이 많이 보는 MissyUSA와 Radio Korea의 게시판에 Moving Sale 광고를 냈다.
또한 PLB 아파트 보증금으로 예치해 놓은 두 달치 렌트비를 한 푼이라도 깎이지 않기 위해 시설물 검사(moving-out inspection) 지적사항이 없도록 주방과 화장실을 '삐까뻔쩍' 광이 날 정도로 소제하였다. 냉장고 안과 가스 레인지는 진즉 깨끗이 닦아놓고 지낼 걸 하는 생각도 들었다.

드디어 2월 5일 LAX 공항에서 서울행 비행기에 올랐을 때 LA에서의 1년이 눈 깜짝할 새 지나간 것 같았다. 전반부 봄학기에는 어학연수 차 함께 온 둘째아이와 함께 학교에 다니느라 바빴고, 후반부에는 경희대의 로스쿨 준비 관계로 나까지 덩달아 바쁘게 지냈던 것이다.
2007년 상반기에 UCLA 로스쿨 로푸키 교수의 도움으로 여러 편의 논문을 쓸 수 있었던 것은 큰 성과였으며, 가을학기에 제리 강 교수의 강의를 청강할 때에는 로스쿨 개원 시 적용할 영어교수법의 요체를 배울 수 있었다.

적잖은 돈이 들긴 했지만 귀국을 앞두고 아들과 함께 여기저기 다녔던 여행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
이와 같이 연구년 중의 가장 큰 수확이라면 아들과 함께 지내며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 로스쿨 영어강의에서 커리어 상의 활로를 발견하게 된 것, 그리고 LA와 서울에서의 휴먼 네트워크의 의미를 새삼 깨닫게 된 점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Purple magnolia is in full bloom in front of UCLA Law Library. 태평양을 건너 13시간만에 도착한 서울의 모습은 1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누구는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자기가 없는 동안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게 실망스러웠다고 하지만, 내가 존재함으로써 미국에서 보고 배운 것을 토대로 지금부터 새로운 의미를 쌓아가는 일이 매우 보람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서울은 전과 다름없네
   나 없이도, 하지만 내가 있음으로 해서
   더욱 뜻 깊어지네.

   All things are usual
   Without me, but with me
   Getting more senses.

(2008. 2. 7. 설날 아침에 UCLA.미국 견문기를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