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심전력으로 추구하는 것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 나가서 자기소개를 하다보면 어떻게 '인생 제2막'을 열게 되었나 설명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제가 전에는 은행에 다녔다는 것, 은행에서는 국제금융과 조사업무를 다루었다는 것, 2000년에 학교로 옮긴 뒤로 국제거래법과 개인정보보호, 북한법에 관하여 연구를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을 밝히게 됩니다.
사실 한 가지 분야에 전념하기도 어려운데 여러 분야를 동시에 추구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여러 분야로 보이지만 실은 한 가지 필생의 연구 과제에 집중되어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의 사명이라 할까요, 그것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에 따라 남측 주민들이 부담해야 할 통일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안 - 프로젝트 금융, 자산유동화, 새로운 담보법, 인터넷법, 북한법을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일입니다.

학자로서 동시에 여러 분야에서 연구를 할 수 있습니까?

교수가 시간이 많고 한가해서 이것저것 연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학기 중에는 수업준비를 해야 하고 방학 중에는 더 바쁩니다. 저는 앞으로 강단에 설 수 있는 기간 중에 다른 교수님들이 수십년간 해오신 연구실적을 쌓아야 하므로 부지런히 논문을 쓰고 발표를 하는 것뿐입니다.
어느 교수나 학기 중에는 시수를 채우는 강의를 해야 하고 이를 위해 적잖은 시간을 들여 강의자료를 준비해야 합니다. 관여하는 학회의 학술세미나는 물론 정부기관의 각종 회의에도 나가야 하지요. 방학중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연구과제나 논문을 쓰고 입학전형 등 학교 행사에도 참여해야 합니다.
그러나 저는 1년에 5편 이상의 논문을 쓰겠다고 작정하였으므로 다양한 분야에서 이슈가 될 만한 주제를 찾아 틈틈이 원고를 쓰고 있습니다. 비록 제가 원해서 하는 일이지만, 대부분 마감일에 쫓기는 일이라 독촉을 받을 때의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습니다.

다양한 연구주제가 서로 관련이 있다는 말인가요? 2006년 학술 세미나장에서 박사학위논문의 지도교수인 정완용 교수와 함께

그렇습니다. 본래 제 전공분야는 프로젝트 금융(PF)과 자산유동화(ABS)를 중심으로 한 구조화금융법제이므로 회사법의 자금조달 편, 나아가 국제거래법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PF와 ABS는 통일시대에 북한의 인프라를 복구·재건하는 데 긴요한 자금조달기법이므로(박사학위논문의 골자) 통일에 대비한 북한법제에도 관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제가 은행을 잘 다니다가 급여가 절반에도 못 미치는 학교로 옮긴 것은 제가 하고 싶은 연구를 계속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IMF 사태로 발탁인사제가 도입될 때까지 산업은행에서 행원과 대리를 17년이나 했습니다. 저와 같이 17년 동안이나 한 계급에 머물러 있었던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알고 동류의식을 느끼기도 했지요.

그래서 1996년 '산은 사료전시회'를 기획할 때 제가 승진을 할 수 있는 기회는 평양지점장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순간 북한의 기업, 주민들에게 신용대출을 해줄 수는 없고 담보가 될 만한 재산을 잡아야 한다는 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그때 마침 미국 SMU 로스쿨에서 국제거래법을 가르쳐주신 윈십 교수님이 폴란드에 가서 미국 담보법제(UCC Article 9)를 전수해주었다는 것을 상기하였습니다.
일본 동경대의 우치다 다카시(內田 貴) 교수가 "21세기에는 담보제도의 중심이 자산가치가 아닌 수익가치(현금흐름)로 바뀌고 있다"는 담보법제의 패러다임 변화를 주장하였는데 제 연구도 그와 맥락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제 연구분야인 PF, ABS, 리스, 팩토링이 이에 해당하는 것들이지요.
그래서 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나라에서 새로운 동산담보법제를 고안하여 성공적으로 시행을 한 다음 북한에 이를 제안해보자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학자들이 별 관심을 갖지 않고 있기에 제가 직접 연구를 해볼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연구계획을 갖고 있나요?

저는 2000년부터 이 분야의 연구를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있습니다. 가장 효과적인 방안은 기업동산 및 매출채권을 담보화하는 것이고, 구체적으로는 공장 기계·기구, 재고자산, 매출채권을 담보로 취득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일입니다.
우선 제1 단계로 2002년에 아산복지재단의 연구비지원을 받아 체제전환국의 담보제도를 연구하여 그 결과보고서를 단행본으로 출간하였지요. 2003년에는 통일부의 용역의뢰를 받아 개성공단에 필요한 담보제도를 조사하였으며, 2004년에는 제2 단계로 현실적으로 적용 가능한 정보기술에 관하여 정보통신정책연구원과 공동으로 연구를 수행하였습니다.
그 결과 RFID를 사용하여 담보목적물을 특정하고 이를 기술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여 그 내용을 특허출원하였고, 2008년에는 이 기술을 더욱 발전시켜 국제적인 PCT특허를 출원하였습니다. 2012년 6월부터 우리나라에서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동산.채권담보법이 시행됨에 따라 구체적으로 이 기술을 적용하는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이 기술이 적용되는 대출이 주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2013년 5월 금융감독당국과 은행의 실무자들을 대상으로 기술시연회를 열었습니다. 지금은 스마트 기기를 가지고 셀프체크하는 방식의 매우 혁신적인 로 코스트 동산담보관리 방안을 구체화하고 있는 중입니다.
* [특허 제10-0620399호] 비점유형 담보정보가 기록된 RFID태그 및 이를 활용한 비점유형 담보정보 공시 시스템 (2006.8.29 등록)
* [특허 제10-1022762호] 자동인식데이타수집(AIDC) 기술을 이용한 동산관리시스템 및 그 운용방법 (2011.3.9 등록)

2006년부터는 제3 단계로 대외 공모과제에 응모하여 그 동안 연구하였던 내용을 시범사업으로 실시하고, 이를 법제화한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법무부 입법작업에 관여하여 [동산.채권등의 담보에 관한 법률]로 실현되었습니다만, 아직 제대로 시범사업을 해보지 못해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궁극적인 목표는 체제전환국이나 개도국, 북한에 입법을 권고하는 것이므로 2007년 연구년(Sabbatical year)을 맞아 다음 단계의 작업으로 국내 법제의 효과를 확인하고 이를 해외에 수출하는 방안을 연구하였습니다. 미국 UCLA 로스쿨에 교환교수로 가서 그곳 로푸키(LoPucki) 교수와의 디스커션을 통해 몽골과 베트남, 중앙아시아의 체제전환국, 궁극적으로는 북한에 새로운 담보법제를 제시한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최종적으로 이러한 동산담보법제의 수출이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의 수출까지 수반하게 되며, 우리나라 법률시장의 외연이 그만큼 확대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인터넷법 연구는 무슨 관련이 있나요?

사실 개인정보보호는 학교로 옮긴 후에 관심을 갖게 된 분야입니다. 2001년 한국정보보호진흥원의 의뢰로 개인정보보호를 침해하는 국제거래의 효력에 관하여 국제거래법의 관점에서 검토한 이후 몇 차례 프라이버시 보호에 관한 국내외 용역과제를 수행하였습니다.
개인정보 이슈는 사생활의 비밀 보장의 문제로서 헌법학자들이 많이 연구하고 있지만, 전자상거래의 핵심요소로서 상법학자들도 관심을 갖는 주제입니다. 저는 인터넷법학회의 임원으로 활동하면서 유비쿼터스 네트워크의 순기능과 역기능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RFID를 제 연구과제에 응용하는 방안을 연구하였던 것입니다.
사실 국제금융거래는 실무를 떠난 지 오래 되어 전문가라 자처하기는 곤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개인정보의 보호가 우리가 정보화사회로 진입하면서 날로 중요시되고 있는 만큼 저 역시 우리나라의 정보보호 관련법제와 동향을 국내외적으로 정리·소개하는 일을 힘을 쏟고 있지요.
[2012.12.30 최종 정리]